[TF르포] '요양병원발 집단감염' 부산 북구 주민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불안
입력: 2020.10.17 09:00 / 수정: 2020.10.17 09:00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부산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해뜨락 요양병원에 15일 오전 긴급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부산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해뜨락 요양병원에 15일 오전 긴급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만덕동 일대는 차량조차 드물어…일부선 "거리두기 완화 너무 빠른 것 아니냐" 지적도

[더팩트ㅣ부산=김신은 기자] "요양병원 확진자 발생한 거 들었어?"

"사망자가 또 나왔단다."

"운전해서 북구를 지나가도 무서워서 창문을 못 열겠더라니까!"

지난 14일 부산 북구 만덕동 소재의 한 요양병원에서 53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긴장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12일 0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1단계로 조정하겠습니다." 지난 11일 부산시는 정부의 거리두기 완화 조치에 따라 기존 2단계로 유지하던 거리두기 방침을 하향 조정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시작된 강화된 방역 조치로 지난주 부산지역 코로나19 확진자는 하루 평균 7.1명에서 3.6명으로 줄어들었고, 감염 재생산 지수도 0.55로 유행 감소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바로 다음날인 13일. 부산 북구 만덕동의 한 요양병원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그 다음날 이 병원 직원 10명과 환자 42명이 무더기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확진자 중 사망자도 2명이 발생했다. 이들을 제외하고 지난 9월부터 7명이 유사 증상으로 사망한 사실도 확인됐다.

현재까지 이 병원의 누적 확진자는 58명으로, 한 집단에서 50명이 넘는 대규모 확진 사례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 집단 발병으로 동일 집단격리(코호트 격리) 조처가 내려진 해뜨락 요양병원에 긴급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코로나19 집단 발병으로 동일 집단격리(코호트 격리) 조처가 내려진 해뜨락 요양병원에 긴급 방역이 실시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16일 기자가 방문한 북구 만덕동 일대는 잔뜩 얼어붙었다. 특히 해당 요양병원 인근에는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이동하는 차량도 드물었다. 취재를 위해 다가서면 마스크를 단단히 여미고는 멀찍이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운 좋게 만난 이곳 주민 김모(73·여)씨는 "자꾸 북구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다고 하니까 하루하루가 무섭고 기분도 괜히 싱숭생숭하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김씨와 같이 있던 또 다른 주민 최모(63·여)씨는 "이제 재난문자가 올 때마다 심장이 덜컹한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58·여)씨는 "북구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오면서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딸에게 매일 안부전화가 온다"며 "당분간 가게 문을 닫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어차피 안 되는 장사에 전기세라도 아끼자’며 문을 닫은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해당지역 요양병원과 관련 시설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만덕동 요양병원 확진 이전에도 북구의 목욕탕과 음식점 등에서 확진자가 잇따르면서 급기야 부산시가 지난 2일 0시부터 2주 동안 전국에서 처음으로 동 단위 '특별 방역조치' 대책을 내렸기 때문이다. 또 시는 지난 14일 요양병원 집단감염 발생 이후 이를 2주 더 연장했다.

직원들은 출퇴근 시에 외부로부터 바이러스를 옮기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요양병원에 가족을 둔 보호자들의 계속되는 문의전화도 불안을 더 가중시킨다.

북구의 한 요양병원에 종사하는 직원 김모(51·여)씨는 "최근 수십 통의 문의전화를 보호자들로부터 받고 있다"며 "혹시 모를 감염에 대한 우려로 더 조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집합제한으로 단계가 완화돼 영업을 재개한 노래방, PC방 등이 최근 만덕동 요양병원발(發) 집단감염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지난달 집합제한으로 단계가 완화돼 영업을 재개한 노래방, PC방 등이 최근 만덕동 요양병원발(發) 집단감염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산=김신은 기자

지난달 가까스로 영업을 재개한 노래방과 PC방 등 고위험시설도 요양병원발(發) 집단감염으로 좀처럼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젊음의 거리 서면에 위치한 한 코인 노래방 내부에는 ‘불금’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부분의 부스가 텅 비어 있었다.

코인 노래방 사장 윤모(41)씨는 "코로나 이전에는 평일 낮에도 손님이 꽤 있었다"며 "아직 필수 방역 수칙에 따라 부스당 1명만 이용할 수 있는 제약이 있지만 어쨌거나 영업을 재개해 한시름 놨다 싶었는데, 이 분위기대로라면 영업중단 때와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다"고 푸념했다.

서면의 한 대형 PC방 내부에도 게임 소리만 간간이 울려 퍼졌다. 마스크를 착용한 이용객 몇몇이 조용히 좌석을 한 칸씩 띄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고위험 시설로 분류된 업종의 업주들은 피해를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언제 또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한 심정도 가득했다.

PC방 사장 이모(45)씨는 "이제 PC방이 위험한 곳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게다가 아직도 부산에서 확진자가 끊이질 않고 있는데 코로나 이전처럼 돌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거나, 아예 못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거리두기 1단계 완화가 마냥 반갑지 않다"고 털어놨다.

부산시 공식 유튜브 채널 ‘붓싼뉴스’을 통해 안병선 부산시민방역추진단장이 코로나19 대응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붓싼뉴스 캡처
부산시 공식 유튜브 채널 ‘붓싼뉴스’을 통해 안병선 부산시민방역추진단장이 코로나19 대응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붓싼뉴스 캡처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거리두기 단계 완화가 섣부른 조치라는 지적과 함께 부산시의 확진자 공개에 대한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수영구에 사는 시민 곽모(40)씨는 "최근 요양병원 확진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며 "부산시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에 사는 구·군민에게만 문자를 보내던데 적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어디에서 몇 명의 확진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감염이 됐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시민 하모(31)씨는 "확진자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아 부산시 공식 유튜브 채널인 ‘붓싼뉴스’를 통해 직접 확인하고 있다"면서 "연세가 많으신 제 조부께서는 최근 만덕에서 확진자가 속출한 것도 모르고 계시더라"고 비판했다.

한편 지난 16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리가 부산을 찾아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했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부산의 경우 최근 코로나19 위험 요인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여지없이 코로나19가 독버섯처럼 번져 나갈 수 있다"고 국민과 지자체, 정부의 선제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또 부산 북구청은 오는 29일까지 만덕동 소재의 모든 어린이집과 북구육아종합지원센터(만덕1로1040번가길 37)를 대상으로 전격 휴원 명령을 내렸다.

정명희 북구청장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지역을 만들기 위해 방역 최전선에서 24시간 비상체계를 가동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확진자가 지속 발생하고 있어 마음이 굉장히 무겁다"며 "부모님들과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어렵게 휴원을 결정하였으니 이번 위기를 함께 이겨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hcmedi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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