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당 대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현충탑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배정한 기자 |
선명하고 강력한 집권 여당 행보 기대하는 텃밭 민심은 회의적…7개월 항해 목적지가 이 대표 정치인생 기항지 될 수도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더불어 민주당을 이끌어 갈 이낙연 호가 닻을 올렸다. 대권 도전의 목적지에 이르기 까지 7개월이 소요되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뱃길이다. 출항의 아침 바다는 그러나 긴 뱃길의 순항을 기대할 만큼 잔잔하지가 않다.
오히려 전례없이 거칠게 일렁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전국적 2차 팬데믹이 우려될 정도로 위기적 상황이다. 의료 인력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협회는 파업을 무기로 정부에 저항하고 있다. 북미 관계에서 매개자적 역할을 자임하며 순조로워 보이던 남북관계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강제동원 배상 대법원 판결로 경색된 한일 문제도 풀릴 기미가 없다. 아베 신조 총리의 사임에 따른 관계 개선 전망 또한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 문재인 정권을 독재로 규정할 정도로 악화된 여야 관계 또한 현재로선 협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곳곳에 암초가 널려있고 고비 고비 격랑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높은 파고를 헤쳐 갈 강력한 동력 장착이 이낙연 호의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다. 멈추지 않은 추진력만이 흔들림 없는 항해를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정감과 중량감이라는 이낙연 대표의 정치적 캐릭터가 험난한 물살을 헤쳐가는 강력한 동력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냐는 얘기다. 집권여당의 텃밭 광주의 민심은 일단은 회의적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왼쪽)를 예방하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
광주 전남 지역에서도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 여론조사에서 다수의 지지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지지율은 상대 평가의 결과이지 국정운영의 전망과 결합된 인식은 아니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상 이번 민주당 당 대표 경선은 비대면으로 치러지면서 후보들의 당 운영 청사진과 열정이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선거운동이 정체적 분위기에서 치러지면서 이낙연 대세론이 고스란히 굳었다. 이 대표로선 코로나19 국면 덕을 본 셈이다.
집권여당 텃밭 민심에 자리잡은 이낙연 리더십에 대한 회의는 이 대표의 정치적 캐릭터가 촛불 정권의 개혁철학과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치적 논란에 단호한 선을 긋지 않고, 결코 과하지 않으며, 지지 세력의 진영논리의 편에도 서지 않는 균제된 행보에서 빚어진 이미지다. 지역을 넘어선 이 대표의 고른 확장성도 그같은 이미지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다.
이 대표는 국무총리 시절 ‘사이다 발언’으로 야권과의 긴장 관계를 슬기롭게 헤쳐왔다. 정권 지지세력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야당의 심기를 격하게 거슬리지 않는 지혜로운 처신이었다. 그러나 이제 야권의 비판적 언급의 틈을 노려 언어로 역공하는 ‘사이다 발언’ 만으로는 집권여당 1인자의 리더십을 충족시킬 수 없다. 당정이 요구하는 정책과 개혁을 관철해가야 하는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다.
경선이 끝나고 이 대표는 집권여당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2인자로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도 유력 대권 주자로 자리잡은 이 대표의 방패막이 이제 될 수는 없다. ‘이낙연 대세론’은 ‘이낙연 역량론’으로 논점이 모아질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왼쪽)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국회=배정한 기자 |
문재인 정권을 여전히 ‘촛불 정권’으로 인식하고 있는 텃밭 민심은 이대표에게 국민이 176석을 맡긴 정당의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하고 있다. 안정감과 균형감으로 축적된 이 대표의 기존의 정치역량은 단호함과 선명함을 기대하는 지지세력의 열망을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이 대표는 이 질문에 부단히 답해야 한다.
정치적 전략이 뛰어난 이재명 지사는 이번 경선 국면에서 진보와 보수 간 전선이 분명한 거침없는 정책제안 행진을 이어가면서 이 대표의 이러한 취약점을 교묘하게 공략했다. 이 대표를 겨냥하는 몸짓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이 지사의 칼끝은 이미 이 대표를 향하고 있다.
이 대표는 대권 후보로 나설 7개월 후 목적지에 닿는 항해를 무사히 완수하면 더 큰 배를 갈아타고 회심의 항해에 나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 대표 임무 만료는 이 대표의 정치 인생에선 목적지가 아닌, 잠시 선박이 머무는 기항지다.
좀 가혹한 얘기 같지만 이 기항지에서 이 대표는 보다 큰 배의 선장 역할을 부여받지 못할 수도 있다. 7개월의 항해가 그 시험대다. 일단은 폭발적인 엔진을 장착한 이낙연 호의 거침없는 순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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