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력한 지역분권시대 이끌 '큰 꿈' 가진 후보들 출마 기대[더팩트 ㅣ부산=고기화기자] "부산은 도시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4월 총선을 일주일쯤 앞두고 부산을 방문해 한 말이다. 경부선 철도 관련 공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긴 하지만 부산시민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이 대표는 "100년 전 설치된 경부선 철도가 부산을 동서로 갈랐고, 이 때문에 교통체증이 많고 도시가 초라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 지하화’가 중요하다는 뜻으로 한 얘기이겠지만 ‘제2의 도시’ 부산을 폄하했다는 논란을 빚으면서 구설수를 자초한 ‘실언’이 됐다.
하지만 ‘부산이 초라하다’는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지 싶다. 그래서 더 부산시민이 발끈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가 어디인지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인천이 부산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부산시민으로서는 마뜩잖은 일이다.
부산은 1970~1980년대 산업 번창기를 지난 후 좀체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산이 침체기를 겪는 동안 인천은 송도국제신도시 등을 조성하면서 ‘제3의 도시’였던 대구를 제치고 이젠 부산을 넘보고 있다. 이미 인천이 부산을 추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제지표도 여럿 있다. 지역내 총생산(GRDP)은 지난 2016년부터 인천이 부산을 앞질렀다.
부산이 인구마저 인천에 따라잡힌다면 ‘제2의 도시’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실제 통계청은 앞으로 20년 뒤인 2040년쯤엔 인천이 300만명대 인구수를 유지하면서 인구 감소세인 부산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자칫 부산이 꿈을 잃은 도시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부산이 직면한 현실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내년 4월 치러질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후보자들이 이를 깊이 고민했으면 하는 뜻에서다.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사퇴하면서 치러지는 내년 4월 보선은 부산의 100년 미래를 책임질 시장을 뽑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큰 꿈’을 가진 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부산시장 후보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무수히 많다. 어떤 이는 벌써부터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고, 어떤 이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조짐 속에서도 물밑에서는 매우 분주한 모습이다. 이미 경쟁은 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거론되는 후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딱히 새로울 게 없는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느낌을 받는다. 제각각 부산의 미래비전을 이야기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린다. 왜일까? 쇠락해가는 부산을 위기에서 구할 강력한 힘과 진정성을 갖춘 후보를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게다.

내년 보선은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가 함께 치러짐으로써 부산과 서울의 유권자가 1143만명에 달한다. 이는 전국 유권자의 26%에 달하는 수치다. 국민 4명 중 1명은 투표할 수 있다. ‘대선급’ 보선으로 불릴 정도로 판이 커진 셈이다.
대선 전초전 성격의 ‘빅매치’인 만큼 부산시장 선거에 나설 후보들에게서 ‘큰 정치인’을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만고만한 인물들이 경쟁해서는 초라한(?) 부산의 미래를 확 바꿀 수 없다. 몇 십년을 끌어온 동남권신공항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부산시장 자리를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하는 이에게서 무슨 발칙한 상상력과 새로운 창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 말 속에 무사안일과 소심함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기우일까.
초대 민선 부산시장을 지낸 문정수 전 시장은 늘 "10년간의 국회의원보다 민선시장 시절이 훨씬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하곤 한다. 김영삼(YS) 대통령 때 여당의 사무총장을 지낸 힘있는 정치인답게 부산의 굵직굵직한 사업을 많이 해냈다. 국방부가 그토록 반대한 수영비행장 이전이나 당시 시청의 거의 모든 실국장들이 반대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킨 것은 ‘힘’과 ‘뚝심’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게다.
앞으로의 부산시장은 지방자치시대를 뛰어넘어 강력한 지역분권시대를 열어젖히는 ‘큰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갈수록 추락하는 부산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부산시민의 자존심을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기에 부산시장 후보자들은 출마 전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으면 한다. ‘나의 꿈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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