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궂은일 거부할 수 없는 ‘학교배움터지킴이’의 노동인권 실태
입력: 2020.07.23 12:09 / 수정: 2020.07.23 12:09
전남 화순군 A초등학교 전경./ 학교 홈페이지
전남 화순군 A초등학교 전경./ 학교 홈페이지

시급4750원에 교장관사 제초작업, 조경수 가지치기 등 '노예' 수준 "현대판 임계장"

[더팩트ㅣ광주=문승용 기자] 봉사를 명분으로 배움터지킴이에게 가혹한 노동조건을 정당화하고 있는 전남 화순군 벽라리 소재 한 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의 노동인권 실태가 가히 노예 수준에 가까워 '현대판 임계장 이야기'와 같다는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다.

화순 A초등학교에서 10여년 간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해 온 이 모(74)씨는 하루 8시간 근무 시 일당38,000원(시급 4750원/2019년 기준)을 기본급으로 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교장관사 등 제초작업, 조경수 가지치기, 농구골대 등 페인트 작업까지 배움터지킴이의 근무조건과는 동떨어진 노동을 해왔다.

또한 유치원 새장 등 보수작업, 교실 에어컨 등 청소, 무거운 짐 운반 등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노역을 도맡아 해왔다. 뿐만 아니라 이 씨는 택배 관리, 등기우편 수령 등 근로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도 처리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발병으로 인해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등·하교시키면서 차량이 많아지자 통행로 및 보행자 통로 통제, 공무상 차량 및 출입자 발열체크, 마스크 착용 확인, 외부인 전면 통제 등의 업무도 병행해야 했다.

이 씨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보람 있는 일이라는 사명감과 요즘 같은 취업불안 시대에 어렵게 얻은 일자리라는 자기 위안으로 작은 임금과 고된 하루 노동에도 성실하게 활동해 왔다. 이 씨는 최근 고된 일에 비해 보수가 낮고 복지 혜택도 열악하다는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학교 측으로부터 묵살당했다고 한다.

화순 A초등학교에서 10여년 간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해 온 이씨가 교장관사 등 제초작업, 조경수 가지치기, 농구골대 페인트 작업 등을 작성한 활동일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제공
화순 A초등학교에서 10여년 간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해 온 이씨가 교장관사 등 제초작업, 조경수 가지치기, 농구골대 페인트 작업 등을 작성한 활동일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제공

이 씨의 이러한 사연을 전해 들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이하 학사모)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상여금·각종 수당, 복리후생적 급여, 특별 근무수당·초과근무수당·연차휴가보상비·퇴직금을 제외하는 등 열악한 처우를 제공한 이 학교장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광주지방노동청에 고발돼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이 씨는 활동 일지에 명시된 내용 외에도 배움터지킴이의 업무가 강화되거나 추가되는 등 업무가 과중 돼 잦은 스트레스를 받아 10여 년간 일해 온 학교를 최근 퇴사한 상태"라고 밝혔다.

학사모는 이어 "서울의 경우 초등학교와 특수학교는 약 180만원의 최저임금을 받고 있고, 강원도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월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며 급식비(월13만원), 명절휴가보전금(연100만원), 연차 유급휴가, 퇴직금 등의 노동조건을 보장하고 있다"며 노인 노동인권의 모범사례를 조명하면서 "충남은 하루 평균 3시간 근무에 28,000원, 광주는 1일 6시간 근무에 35,000원 등 근무시간 대비 수당을 비교해 보면 자원봉사활동 형태의 학생보호인력의 경우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 상황임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또 "배움터지킴이 제도는 주로 교내 순찰 위주로 교내폭력 예방 활동이 주된 목적임에도 대부분의 학교 현장에서는 주 출입구에 관리초소를 만들어 배움터지킴이를 상주하도록 하고, 학교 내 외부인 출입 관리 및 통제, CCTV 상시 모니터링, 등·하교 지도 및 교통안전 지도, 취약시간·지역 교내 및 교외 순회지도 등 학교장이 명하는 학교 안전 관련 제반 업무까지 맡고 있다"고 제도 취지가 악화된 상황을 강조하며 "제도 시행 초반에는 배움터지킴이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도록 존중된 것과 달리 최근에는 노무관리가 매우 엄격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학사모는 이어 "정규직 전환(근로계약을 체결한 학생보호인력)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이다"며 "봉사라는 이름으로 양보를 강요하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배움터지킴이를 ‘근로계약을 체결한 학생보호인력’으로 규정할 것을 교육당국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학사모는 "이처럼 배움터지킴이의 업무와 책임을 이를 통제하는 힘은 더욱 엄격하게 정비되고 있으면서, 이들의 노동조건을 보장하고, 정당한 대가를 치를 책임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미루고 있다"며 "배움터지킴이의 근무시간과 책임에 걸맞은 노동조건이 보장할 수 있도록 상시 근로감독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이 씨 등 배움터지킴이 노동자가 최저임금 수준 이상 급여 보장 등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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