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광주시 출자·출연기관 잇단 설립, 정말 시민 위한 일인가
입력: 2020.06.22 10:06 / 수정: 2020.06.22 10:06

광주광역시가 시 산하 출자출연기관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 시민 행정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 조직 확장인지를 되묻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은 광주시청사 전경 /광주시 제공
광주광역시가 시 산하 출자출연기관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 시민 행정서비스를 위해 꼭 필요한 조직 확장인지를 되묻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사진은 광주시청사 전경 /광주시 제공

"세금 있는 한 공무원 수 무한정 늘어난다" 파킨슨 법칙 심각하게 되새길 때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시민들은 효율성을 내세우며 행정 조직의 질적 진화를 요구하지만 대다수 지자체의 조직은 끊임없이 양적 확대를 꾀하는 추세에 놓여 있다.

통상적으로 새로운 기구의 설립이 조직 확대의 중심 요인이 되며, 그때마다 시민사회의 고도화된 행정 서비스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이 전형적으로 등장한다. 민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지방 공기업이나 출자 출연기관이 신설되는 것도 낮익은 경로다.

새로운 행정기구의 설립은 대부분 단체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공약에서 예고되는 경우가 많다. 시민 공동체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포장된 핵심 공약에 묘연하게 몸체를 숨긴 새로운 기구 설립의 암시는 당선자 신분이 됐을 때 비로소 전모를 드러내고 취임과 함께 당선자의 중심 시책으로 무게중심 이동을 한다.

선거 캠프 정책기획 팀의 생각을 요람으로 삼는 이러한 신설기구 탄생의 과정은 조악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무모하기조차 하다. 전문적인 연구원에 의한 과학적인 타당성 검증이나 효용성에 대한 면밀한 진단 과정이 생략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정책의 콘텐츠는 공허하고 그럴 듯한 슬로건만 존재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때문에 복잡하고 다양해진 시민사회의 행정 서비스 요구를 적절히 관리하고 대응하는 통합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이미 설 자리가 없다. 시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많아졌으니,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단순 논리의 깃발만 펄럭인다.

광주광역시의 사례만 살펴봐도 세 사람의 단체장이 바뀌면서 3개의 시 출자출연 재단법인이 만들어졌고, 민선 7기 이용섭 시장 체제에서 또 다시 두 개의 재단이 설립을 앞두고 있다. '광주사회서비스원'과 '광주관광재단'이 7월 중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복지현장의 서비스 강화, 지역 관광산업 활성화가 설립 취지다. 광주시 의회가 또 최근 교통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광주 교통공사' 설립을 제안했다. 집행부 입장에서 마다 할 이유가 없기에 이 또한 근일에 추진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이러한 기구들의 역할이 어느 날 돌연 필요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의 행정 체계에서 소화해왔던 기능의 확장 선에서 추진되는 일들이 대다수다. 이 때문에 이런 기구들의 초반 업무는 집행부 사업을 위탁 혹은 대행하는 일들로 채워지기 십상이다. 이를 상식선에서 받아들이자면 전담했던 사업들이 넘겨졌기에 관련 집행부 공무원 수가 줄어야 할 일이지만 기구·기관이 새로 생겼다고 공무원 수가 줄었다는 얘긴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는 더 큰 곳에 있다. 집행부에서 위탁·대행 기관으로 사업이 넘겨지며 이른 바 유통마진이 발생해 시민 혈세의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상당한 액면의 예산이 기구·기관의 사업수행 조직 운영비로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상 할당된 예산의 30% 정도가 이에 소요되는 터라 행정 서비스 수요자 입장에서 반가워 할 일은 아니다.

더 고약한 문제는 서비스 수요자의 심리적 스트레스가 배가될 수 있다는 측면이다. 집행부 업무 관련 직원의 관리 감독만을 받아오던 수요자들이 이제 중간 관리자 격인 기관의 업무 지휘까지 받아야 하는 국면에 처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시어머니를 한 분 더 모셔야 하는 며느리 꼴이 되는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폐헤들이 우려되는데도 왜 각급 지자체들은 출자출연기관의 설립을 거듭하는걸까? 다소 긍정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자면 단체장의 성과주의 추구, 이를테면 치적쌓기에서 비롯된 시도일 수 있다.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선거 캠프 측근들의 자리 만들어주기 차원의 목적도 번번히 지적되는 사례다.

광주시의 경우만 해도 출자출연기관이나 신설기구 임원 내정을 두고 이미 측근인사니, 캠프인사니 하는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민선 6기 윤장현 시장 또한 임기 초부터 캠프인사, 절친 인사, 외척인사 등 여론의 비난에 끊임없이 시달리다 결국 재선에 실패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C 노스코트 파킨슨(1909~1993)은 1955년 '이코노미스트' 잡지에 '파킨슨의 법칙'을 발표했다. 공무원의 수는 실제 해야 할 일과 무관하게 증가하고, 세금을 올릴 수 있는 한 공무원의 숫자는 무한정 늘어난다는 법칙이다. 파킨슨은 1950년대에 이르러 영국의 식민지가 크게 줄었어도 담당 공무원 수는 19년간 4배나 늘어난 경과를 추적해 논점의 근거로 삼았다.

이후 60여년이 지난 2020년, 다시 파킨슨 법칙을 떠올리며 광주시의 조직 부풀리기에 대해 가타부타 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착잡하다.

forthetru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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