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의혹 관련 망자 위한 추모곡 '대장동 블루스' 발표
반세기 넘게 인기 작곡가로 한국가요사를 지켜온 안치행이 '팔순'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다. 데뷔곡 '대장동 블루스'는 오는 28일 멜론 등 음악 포털에 정식 공개될 예정이다. /안타프로덕션 |
[더팩트|강일홍 기자] 작곡가 안치행이 '팔순'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했다. 최근 그는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대장동 블루스'를 녹음하고 음원을 공개했다. 반세기 넘게 히트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며 수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음반 취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치행이 직접 밝힌 이 곡은 코로나 19와 대장동 사태로 우울하고 답답한 국민들을 향한 일종의 위로곡이다. 그는 "정치적인 의도나 메시지는 전혀 없다"면서 "단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의 슬픔을 달래고 싶어 마음의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대장동 블루스'는 '너를 보내면서 부르는 노래, 대장동 블루스'로 시작해 '나도 몰래 스친 한줄기 바람 대장동 블~루~스'로 이어진다. 추모곡의 분위기를 살린 애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안치행의 구성진 보컬과 블루스풍 트롯에 담았다. 지난 17일 유튜브에 음원이 올려진데 이어 오는 28일 멜론 등 음악 포털에 정식 공개될 예정이다.
안치행은 1967 실버코인스(Silver Coins)라는 이름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뒤 75년까지 미8군 무대 '패키지 쇼'에서 활동했다. 대중 히트곡 '오동잎'(최헌) '사랑만은 않겠어요'(윤수일) '구름 나그네'(서유석) '연안부두'(김트리오) '아 바람이여'(박남정' '울면서 후회하네'(주현미) 등이 그가 쓴 대표곡이다.
안치행은 조용필의 인생곡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편곡자로도 유명하다. 반세기 넘게 히트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며 수많은 곡을 만들었지만 음반 취입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위는 왼쪽부터 안치행 조용필. 아래사진 앞줄 오른쪽부터(시계방향) 안치행, 장명호(전 아리랑TV사장), 이회택(전 축구국가대표 감독), 조용필(가수). /가넷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는 또 조용필의 인생곡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편곡자로도 유명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원곡은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이 취입한 '돌아와요 충무항에'였지만, 71년 김해일 사망 후 이듬해 조용필의 첫 음반에 통기타 반주로 수록됐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산항의 이별을 내용으로 '그리운 충무항에→그리운 내형제여' 등 일부 가사를 바꾼 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당초 황선우가 작사 작곡한 조용필의 초기 버전(72년 곡)은 안치행이 디스코 리듬의 빠른 록 트로트로 편곡한 현재의 버전(76년)으로 탈바꿈한 뒤 본격적인 인기를 얻는 계기가 됐다.
'꽃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 님 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우네/ 세병관 둥근 기둥 기대여 서서/ 목메어 불러 봐도 소식 없는 그 사람/ 돌아와요 충무항에 야속한 내 님아'('돌아와요 충무항에' 1절)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 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돌아와요 부산항에' 1절)
안치행의 편곡 노래 속 가사에 담긴 '형제'는 70년대 당시 재일 교포들의 귀국 러시와 맞물린 시대적 애환, 동포애를 강조한 사회적 이슈와 맥을 같이 한다. 조용필의 애절한 가창력에 강렬한 대중적 소구력을 흡인한 편곡자의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1942년 출생인 안치행은 72년 전설의 록밴드 '영사운드'의 리더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달무리' '등불'을 발표했다. 작곡가로 변신한 뒤 통산 600여곡에 달하는 대중 가요를 탄생시켰다. /안타프로덕션 제공 |
작곡자로 편곡자로 음반프로덕션 대표로 한 시대를 살아온 그가 팔순의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뜨거운 열정의 분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치행 작곡가는 우리 가요사를 관통하는 자타가 공인하는 셀럽이에요. 수많은 대중 히트곡을 탄생시킨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노래로 그 의미를 표출해오셨거든요. 이번 '대장동 블루스' 역시 그런 연장선상에서 발표하신 곡이라고 보면 되죠."
가요계 1세대 매니저로 70~80년대 대중 스타가수들을 탄생시킨 가넷엔터테인먼트 김성일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열정을 갖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데 나이가 걸림돌은 아니다"면서 "우리 대중문화계에 94세의 나이로 여전히 건강하게 현역 MC로 활동하고 있는 송해 선생이 표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942년 출생인 안치행은 72년 전설의 록밴드 '영사운드'의 리더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달무리' '등불'을 발표했다. 작곡가로 변신한 뒤 통산 600여곡에 달하는 대중 가요를 탄생시켰다. 지난 2010년에도 천안함 전사 장병 추모곡 발표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특히 불경을 힙합으로 재구성한 음반 '심경(心經)'은 그의 55년 가요인생을 회향하는 말그대로 '마음의 경전'으로 평가받는다. 애초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금강경 독경을 권유하는 주변사람으로 인해서 불교에 입문했다. '심경'을 비롯해 '구인사 가는 길' '추억의 백담사' 등 사찰을 주제로 한 불교노래들도 다수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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