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사전답사 ‘기본’발 빠른 뒤처리 ‘달인’
동네에서 흔히 눈에 띄는 작은 강아지 ‘발바리’. 언제부턴가 발바리는 연쇄성폭행범을 일컫는 별칭으로 둔갑했다. 발바리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들에게 붙여진 이유는 범행을 한 후 발 빠르게 흔적을 감추는 연쇄성폭행범들의 도피 행각이 발바리들의 행동과 유사하다는 데 기인한다. 이 용어는 200여 차례에 걸쳐 여성들을 성폭행한 범인이 검거되면서 연쇄성폭행범의 다른 이름이 됐다. 그 후 수많은 발바리들이 등장해 여성들을 떨게 만들었다. 특정 주거지역에 사는 여성들만 골라 성폭행하거나 여대생만 성폭행하는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발바리들의 유형을 분석했다.
지난 1996년, 대전 일대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많은 원룸촌에서 잇달아 성폭행사건이 일어난다는 것. 피해자들의 신고도 이어졌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들에게서 채취한 범인의 정액과 체액을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유전자감식을 통해 범인이 동일인물이란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범인검거는 쉽지 않았다. 워낙 몸놀림이 날렵해 신출귀몰하는데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마치 동네 여기저기를 발 빠르게 쏘다니는 ‘발바리’ 같았다. 이때부터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범인을 발바리라고 불렀고 이때부터 귀엽기만 하던 발바리란 단어는 연쇄강간범을 일컫는 말이 됐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범인은 범행 10년 만인 2006년, PC방에서 체포됐다. 10년 만에 덜미를 잡힌 범인은 이모씨로, 경찰 조사결과 그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대전에만 42명에 달했다. 전국을 돌며 범행을 저지른 횟수는 무려 200여 차례.
대전지역이 주 무대였던 이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2004년부터 범행지역을 확대해나갔고 결국 서울에서 덜미를 잡혔다. 이로써 많은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원조발바리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밤길을 두렵게 만드는 발바리들은 계속해서 등장했다. 공포의 대상이면서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한 발바리들의 유형을 살펴보자.
원룸 발바리
젊은 여성이 혼자 자취하는 경우가 많은 원룸은 많은 발바리들의 먹잇감이었다. 아파트나 단독주택에 비해 경비가 허술하고 침입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것도 원룸이 발바리들에게 표적이 되는 이유다.
원룸 발바리 중 한 명은 인천 연수구에서 활동한 이모(20)씨. 이씨는 연수구 일대를 돌며 3개월 동안 4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 2명의 여성은 성폭행을 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11월 야간주거침입절도미수죄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을 때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TV에서 여자를 납치해 강간하는 재연 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성폭행을 계획했던 이씨는 원룸촌을 돌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다. 여성 혼자 사는 원룸임을 확인한 뒤 귀가하는 여성들의 뒤를 몰래 따라가 여성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입을 틀어막고 집 안으로 밀어 넘어뜨리는 방식으로 성폭행을 했다.
또 미리 접착테이프를 준비해 가 피해자의 입에 붙이고 양손을 묶어 반항하지 못하게 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이씨의 성폭행 행각은 연수구일대에 흉흉한 소문으로 나돌았고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그리고 지난 10월, 결국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런가 하면 지난 9월에는 대구 중구의 원룸촌에서 연쇄성폭행을 저지른 발바리가 경찰에 잡혔다. 범인 남모(29)씨는 원룸 외벽 가스배관을 타고 여성들의 집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 남씨는 2006년 7월부터 잡히기 전까지 16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출귀몰 발 빠르게 흔적 감추는 연쇄성폭행범에 ‘발바리’ 별칭
여성 혼자 사는 자취방 많은 원룸촌, 발바리들의 먹잇감 1순위
그는 여성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뒤 금품까지 빼앗았다. 성폭행을 저질러왔던 중구의 원룸촌은 범인이 마치 제집처럼 훤히 꿰뚫고 있는 지역이었고 3년에 걸친 범행에도 쉽사리 잡히지 않았던 것. 이밖에도 많은 연쇄성폭행범들이 보안에 허술한 원룸의 틈을 비집고 성폭행을 저질러 홀로 사는 여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지킬앤하이드형 발바리
여성들을 힘으로 억눌러 몹쓸 행각을 벌이는 발바리들. 그러나 끔찍한 연쇄성폭행범들도 낮에는 그저 평범한 시민인 경우가 많았다. 낮에는 철저히 자신의 본성을 숨기다 해가 떨어지면 밤이슬을 맞으며 범행대상을 물색한 발바리들이 적지 않았던 것.
청주 일대에서 7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저지르다 덜미를 잡힌 유모(32)씨도 낮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는 지난 5월1일 새벽 4시30분경 청주시 내덕동의 모 빌라에 침입해 A씨(21)를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한 뒤 3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청주지역을 돌며 연쇄성폭행 행각을 벌였다.
주로 새벽시간대에 몰래 집에서 나와 창문이 열려있거나 방범창살이 설치 안 된 집을 골라 범행을 저질렀던 유씨는 낮엔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성폭행을 저지른 날에도 낮 시간대에는 아무렇지 않게 동료들과 어울리며 회사생활을 했다. 아내와 자녀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그는 가정생활도 평범하게 해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에는 수원지역에서 1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일삼은 20대 청년이 붙잡혀 충격을 줬다.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몹쓸 행각을 벌인 박모(25)씨는 평소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아 이웃들의 사랑을 받던 청년이었다.
6년 전부터 동거해 온 여자친구까지 있던 그는 이웃에게 신망이 두터운 젊은이었다. 인사성도 밝고 어른들에게 예의도 깍듯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사람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밤만 되면 돌변했다. 낮에는 모범적인 청년이었던 그는 동거녀가 잠든 새벽이면 몰래 집을 빠져나와 성폭행을 일삼았다. 지난해 10월 새벽 3시경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의 한 원룸에 침입해 잠을 자던 조모(26)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하는 등 2005년 11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발바리행각을 펼쳤다.
2인조 발바리
대부분의 발바리들이 주로 혼자 범행대상을 물색해 성폭행을 저지르지만 2인조로 팀을 짜고 여성을 성폭행하는 범인들도 있었다. 지난 9월 대구에서는 함께 범행대상을 찾아 성폭행을 일삼아 온 박모(30)씨와 양모(28)씨가 잡혔다. 동네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2005년부터 함께 여성들을 성폭행해왔다.
지난 8월5일 새벽 4시50분경에는 대구 동구의 한 원룸에 몰래 들어가 잠자고 있던 김모(23)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성폭행을 한 뒤 금품까지 빼앗았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3년간 16차례에 걸쳐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17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
이들은 범행 후 신고를 막기 위해 피해자들의 휴대폰을 빼앗았는데 실수로 한 휴대폰의 전원을 켜놓았다가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여대생 발바리
특정 나이대의 여성들만 골라 성폭행을 저지른 발바리들도 있다. 특히 여자대학교 근처를 돌며 여대생들만을 골라 범행을 저지르는 성폭행범들이 많았다.
지난 5월 경북 영주경찰서는 여대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B(23)씨를 붙잡았다. B씨는 지난해 6월 영주시 풍기읍에 있는 여대생의 원룸에 들어가 성폭행을 시도하는 등 2006년부터 최근까지 7차례에 걸쳐 홀로 살고 있는 여대생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2월에는 대전에서 여대생만을 노린 연쇄 성폭행범이 꼬리를 밟혔다. 범인은 박모(29)씨로 대전의 한 대학가에 여학생들의 자취집이 밀집한 곳을 돌며 성폭행을 저질렀다.
그는 지난해 9월경 대전시 동구 등 여대생 4명이 사는 원룸에 침입, 이들을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는 등 지난 2006년 7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대전지역 대학가를 무대로 여성 18명을 성폭행하고 1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박씨는 새벽시간대 대학가를 돌다가 혼자 집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따라가 흉기로 위협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이뿐만 아니라 피해여성의 나체사진을 찍은 뒤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각도 서슴지 않았다.
보일러 발바리
연쇄성폭행범이 범행을 계획할 때 하는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여성의 집에 자연스럽게 침입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 고민의 해결방법으로 보일러수리공으로 위장해 집안으로 들어가 성폭행을 저지른 보일러 발바리도 최근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서울 서교동과 창전동 등 마포구 일대에서 20여 건의 성폭행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여성들. 범인은 ‘보일러를 점검하러 왔다’고 속인 뒤 집안으로 들어와 성폭행을 하고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여성들로부터 범인의 DNA를 분석한 결과 2005년 6월부터 마포구와 도봉구 등 서울 강북지역에서 10여 차례 연쇄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범인과 동일인으로 확인됐다.
보일러점검이나 택배배달 등을 핑계로 여성의 집에 태연히 들어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서 ‘보일러 발바리’라 이름 붙여진 이 범인은 지금도 잡히지 않아 인근에 사는 여성들을 두렵게 하고 있다.
[일요시사 김봄내기자 | 더팩트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