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역 앞 집창촌 ‘쩐의 전쟁’ 내막
  • 안송이 기자
  • 입력: 2007.08.29 07:48 / 수정: 2007.08.29 07:49
용산역 앞에 자리한 집창촌 지구의 재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얼마 남지 않은 영업기간 동안 한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집창촌 여성들의 사투가 시작됐다. 버젓이 대낮에도 불을 켜고 영업을 하는가 하면 어느 정도 친분 있는 남성고객과 연락처를 주고받아 따로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하룻밤의 데이트 비용은 무려 3백여만원에 달한다. 그저 성관계만이 아닌 말 그대로 ‘하룻밤 동안의 데이트’이기 때문. 물론 사랑은 아니다. 없어질 집창촌이 아닌 다른 곳에서 꽃피워야 할 꿈 때문이다.
업소에서만 손님을 받고 철저히 개인적인 생활을 해오던 집창촌 여성들이 이렇듯 마지막 한탕을 위해 콜걸 노릇을 하고 있다.

마지막 한탕 위한 외침 ‘오빠야 나랑 놀자’

“최후의 발악이죠. 전화번호 주고 연락 받아서 하룻밤 보내고 2백50만원 받으면 좋은 장사 아닌가요?”
집창촌 여성 중 한명인 김윤희(26·가명)씨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집창촌 안에 있는 업소에서 성관계를 맺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건 남성과의 하룻밤 수입이 훨씬 좋다.
집창촌(集娼村)은 ‘윤락업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뜻한다. 김씨가 일하는 업소 역시 용산역 앞의 집창촌 안에 자리하고 있다. 요즘 집창촌은 불철주야다. 이유는 곧 재개발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
연이어 들려오는 용산 집창촌 재개발 사업얘기와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집창촌에 있는 업주나 직원 모두 마음이 급하다.


김씨는 “업주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장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용산역 앞의 집창촌은 낮에도 붉고 푸른, 색색의 등이 켜져 있는 상황. 이들 업소는 낮에는 5만원, 밤에는 7만원의 비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건 업소 얘기다.
사실 그나마 잡고 있던 일자리를 잃고 당장의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이는 집창촌 여성들이다. 때문에 김씨를 비롯해 오랜 시간 이 일을 해 온 몇몇 동료들은 개인적으로 나섰다.
김씨는 “10번이나 와야 개인 전화번호를 줄까 말까예요. 이렇게 제 번호를 알고 있는 남성들과 따로 만나는 게 요즘 제 주 수입원이죠”라고 말했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김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는 남성들과 만나는 것은 단순히 성관계만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김씨는 “성관계만이 목적이 아니라 같이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가고 싶은 곳도 가고…. 한마디로 하루 온종일 그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거죠”라며, “물론 성관계도 가지지만 하루 동안 저를 사는 비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김씨와 하루를 함께 한 남성들이 김씨에게 건네는 돈은 대략 2백50에서 3백 사이.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러나 김씨는 “믿기지 않을 테지만 그런 미친 놈들도 있어요”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룻밤 비용치고는 과하다 싶은 목돈을 지불하는 이들이 재벌이나 재벌2세는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데 올 일도 없고 절 만날 이유도 없죠”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그렇다면 김씨와 비싼 하룻밤을 보내는 남성은 일반 직장인이나 사업자일 터다.

실제로 김씨와 친분을 쌓고 개인적으로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은 주로 미혼의 중년 직장인 남성이 대다수라고. 기혼남성도 꽤 돼지만 김씨는 “아무래도 미혼 남성이 자주 찾는다”며, “솔직히 하룻밤 술값으로 몇백만원도 쓰는 게 남성들인데 그걸 생각하면 그리 비싼 건 아니지 않나”고 반문했다.
김씨처럼 주업보다 더 수입이 높은, 부업 아닌 부업을 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다. 앞으로 집창촌 여성으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

 
제로 김씨가 있는 용산 집창촌 시세는 평당 1억 5천을 호가한다. 이 때문에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용산 집창촌 재개발 사업에 의사, 변호사, 경찰 등 각계각층 인사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후문까지 돌 정도다. 

 
용산 집창촌 일대 재개발사업 주체인 용산 제2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은 집창촌 개발 공사를 담당할 시공 업체를 선정하는 등 사업 추진을 위해 서두르고 있다.
이들이 추진하는 제2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이란 용산역 앞 집창촌 일대의 건물을 헐고 지상 35층짜리 업무용 빌딩과 37층짜리 주거용 건물 등이 포함된 복합 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조합에 따르면 이곳에는 41~91평형 아파트 1백47가구가 들어설 예정으로 예상 분양가는 평당 3천만원 선이며 일반에 분양될 물량은 70여 가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용산 집창촌은 용적률 9백63%가 적용돼 랜드마크(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형 초고층 복합 단지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대형 건설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한 실정이다.
이렇듯 부동산 부자와 건설업체가 눈독 들이고 있는 용산역 집창촌 재개발 사업은 투자자들에겐 희망의 땅이지만 현재 그 안에 있는 집창촌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절망의 끝자락이다.
이에 김씨는 “다들 재개발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며 “마지막도 얼마 안 남았는데 한탕하고 나가자는 심리가 작용해서 더욱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업소가 불철주야 눈에 불을 켜고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안달인 상황에서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개인적인 만남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걸까.


그에 대해 김씨는 “사실 들어온 지 얼마 안되는 애들이야 무조건 가게 안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처럼 경력도 되고 오래 일한 애들은 오히려 한가하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없던 휴가도 10일이나 생겼고, 주 6일제로 철저히 일하고 있다는 것. 김씨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주 7일동안 일해야 했고 휴일이 따로 없었지만 지금은 일주일 중 쉬고 싶은 날 하루를 쉴 수 있다. 이 때문에 벌 수 있을 때 벌어놓자는 심리가 더욱 크게 작용한다는 것.
그러나 이렇게 집창촌의 마지막과 함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내달리고 있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지금 일하는 집창촌이 사라지면 이런 내 생활도 끝낼 것”이라 말했다.

재개발 사업으로 기울어져가는 용산역 앞 집창촌
낮밤 가리지 않지만 긴 휴가에 주 6일제도 있어


본지와 인터뷰를 한 김씨는 스무살 때 집창촌 업소에서 일하기 시작해 어느덧 7년의 경력이 쌓였다. 그만큼 돈도 많이 벌었다. 사실 버는 족족 물쓰듯 돈을 쓰는 여성들도 있지만 김씨는 차곡차곡 돈을 모아 비싼 서울 하늘 아래 자신의 집을 마련했고, 중형차까지 뽑았다. 자신의 일을 모르는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을 담아 용돈도 꼬박꼬박 챙겨드렸다고. 김씨는 “이왕 이 일을 시작한 거 마지막까지 화끈하게 벌겠다는 생각도 있다”며, “하지만 그것보다는 의류디자이너가 되고 싶던 어릴 적 꿈을 위해 공부하려고 한다. 공부할 동안의 학비 및 생활비를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일하는 신유미(28·가명)역시 김씨와 마찬가지 상황이다. 신씨는 “내가 하는 일을 부끄럽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일터가 없어지는 순간 나도 그만둘 생각이다”며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 그것을 위해 마지막 한탕을 뛰는 것이다”고 말했다.
용산역 앞 집창촌은 곧 오랜 시간 켜져 있던 붉은 등을 내릴 예정이다. 이에 따라 집창촌 여성들도 일상으로 돌아갈 터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생활고 없이 편안하게 사는 것. 때문에 개인 전화번호를 주고 전화가 걸려오면 남성들과 만나 하룻밤을 보내는 개인콜걸 생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꿈이 있어서다.


“지금은 제 휴대전화번호와 이름만 적혀 있고 업소명은 가짜인 가짜명함을 돌려 비싼 값을 치르는 남성들과 만나고 있지만 재개발에 들어가면 연락을 끊고 휴대전화 번호도 바꾸고 새 삶을 살 생각이다”고 김씨는 딱 잘라 말한다. 혹시 성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에 휴일마다 찾던 병원도 재개발과 함께 일을 그만두면 갈 필요가 없다. 김씨는 집창촌 생활 끝자락에 많은 돈을 긁어모으면서도 새로운 생활을 바라보고 있다.
저물어 가는 집창촌의 해를 바라보며 집창촌 여성들은 새 삶, 새 생활을 위해 마지막 한탕을 뛰고 있다.

[일요시사 문다영기자|더팩트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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