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무관심에 진영 대리전…'그들만의 잔치' 교육감 선거
입력: 2024.10.27 00:00 / 수정: 2024.10.27 00:00

서울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 23.5% 그쳐
인기영합성 공약 남발에 불법 선거자금 문제도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이 20%대에 머물면서 교육감 직선제 무용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은 보이지 않고 인기영합성 공약 남발에 진영 대결 양상까지 극심해지면서 선거제도 개편 목소리가 제기된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부착한 투표 참여 홍보 현수막이 보이고 있다./이새롬 기자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이 20%대에 머물면서 교육감 직선제 무용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은 보이지 않고 인기영합성 공약 남발에 진영 대결 양상까지 극심해지면서 선거제도 개편 목소리가 제기된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부착한 투표 참여 홍보 현수막이 보이고 있다./이새롬 기자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이 20%대에 그친데다가 선거 과정에서도 인기영합성 공약 남발에 진영 대결 양상까지 극심해지면서 개선 목소리가 제기된다.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실시된 제23대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은 23.5%를 기록했다. 직선제로 처음 치러진 지난 2008년 15.4%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특히 투표하지 않은 기권표는 636만표에 달했다.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이 득표한 96만3876표보다 약 6배 넘는 수치다.

◆ 후보자들 정책 대신 이념 공방…'정치 중립' 직선제 취지 무색

서울교육감은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학생 84만명을 관할하고, 공립학교 교사와 교육공무원 5만여 명의 인사권을 행사한다. 연간 서울시교육청 예산만 11조원이 넘는다. 문제는 권한이 막강한데도 매번 유권자들의 무관심 속에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교육감 선거 무효표는 총 90만3227표에 달했다. 이는 시·도지사 선거 무효표 35만329표보다 약 2.6배 많은 것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치러져 역대 가장 높은 투표율인 74%를 기록했던 지난 2012년 서울교육감 보궐선거도 무효표가 87만표에 달했다.

현직 교사들 사이에선 교육감 직선제가 깜깜이로 치러지는데다 인기영합성 공약만 난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모 초등학교 교사 A 씨는 "후보들이 교사를 포함해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할 문제들을 별다른 논의 없이 공약으로 내세운다"며 "교내 저녁식사 제공, 학교평가 부활, 학생인권조례 부활 등 학부모 입장에서 구미가 당길만한 공약만 내놓는다"고 꼬집었다.

교육의 정치 중립이라는 직선제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후보자들이 정치적 진영 논리에 치우친다는 비판도 있다. 교육감은 지난 1991년까지 대통령이 임명했으며, 1991년부터 2006년까지는 교육위원회 또는 선거인단이 뽑는 간선제로 선출했다. 이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주민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2007년부터 직선제로 바뀌었다.

제23대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은 23.5%를 기록했다. 투표하지 않은 기권표는 636만표에 달했다.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이 득표한 96만3876표보다 약 6배 넘는 수치다. 사진은 지난 16일 정 교육감(가운데)이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당선 유력 발표를 듣고 진보 진영 단일화 추진 기구인 2024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추진위) 예비후보들과 함께 손을 들어올리는 모습./정근식 캠프
제23대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 투표율은 23.5%를 기록했다. 투표하지 않은 기권표는 636만표에 달했다.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이 득표한 96만3876표보다 약 6배 넘는 수치다. 사진은 지난 16일 정 교육감(가운데)이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에서 당선 유력 발표를 듣고 진보 진영 단일화 추진 기구인 2024서울민주진보교육감추진위원회(추진위) 예비후보들과 함께 손을 들어올리는 모습./정근식 캠프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도 정책이 아닌 진보·보수 성향 후보들 간 진영 논리와 이념 대결 양상이 펼쳐졌다. 정 교육감은 진보 진영 단일후보로 출마하면서 '친일교육 심판'을 외쳤고, 보수 진영 단일후보였던 조전혁 후보는 '좌파 교육 척결'을 구호로 내세웠다.

전문가들은 교육감 후보에 대한 낮은 관심 때문에 정책 공약보다는 진영이나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됐다고 분석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부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교육감 직선제 폐지에 관한 쟁점과 대안' 논문에서 "교육감 선거에 정당이 관여할 수 없어 조직이나 단체의 지원 없이는 출마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후보자들은 정책과 공약은 부차적으로 하고 진보와 보수 진영을 나눠 단일화에만 사활을 걸고, 결국 정당의 색깔을 활용해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 "러닝메이트제" vs "직선제 유지"…선거제도 개편 목소리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해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각종 위법이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은 지난 2008년 제자 최모 씨에게 이자 없이 1억900만원을 선거자금으로 빌린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당선무효형을 확정받고 취임 15개월 만인 2009년 10월 물러났다. 선거 때 진 빚을 갚기 위해 건설업체 대표에게 3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청연 전 인천시교육감도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아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이에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4일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시·도지사가 교육감과 함께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긴 지방교육자치법 및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자는 취지로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됐지만, 당선을 위해 서로 비난하고 진영 다툼을 벌이는 정치판이 돼버렸다"며 "정당의 지원을 받지 못해 선거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각종 위법을 벌이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교육은 정치 중립을 이유로 직선제를 도입했지만 교육적 구호보다 정치적 구호를 먼저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러닝메이트제는 직선제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정당 선거와 연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교육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직선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부교수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선제 실시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의 문제를 명분 삼아 폐지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계에 몸담은 지 오래된 사람으로서 교육자치제는 계속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교육이 정치에 예속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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