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부터 장사했는데"…공시생 없는 노량진 컵밥거리 '썰렁'
입력: 2024.06.28 14:48 / 수정: 2024.06.28 14:48

공시생 줄어 한산…셔터 내린 노량진 거리
"재건축 지역도 아닌데"…부동산 줄폐업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공단기 고시학원 건물에 상가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시형 기자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공단기 고시학원 건물에 상가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시형 기자

[더팩트ㅣ김시형 기자] "노량진이 노량진같지가 않아."

30년째 노량진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28일 낮 12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는 인적이 드물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지하철 노량진역 3번 출구 300m 앞부터 사육신공원 육교까지 약 270m 구간에 이어진 컵밥거리에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2015년 본격 조성된 컵밥거리는 인근 학원에서 수업을 받다 휴게시간을 이용해 간단히 끼니를 때우려는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이날은 대부분 가게가 셔터를 내린 채였다. 과거의 영광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장사했다는 상인 김모(65) 씨는 "여기는 학생들로 먹고 사는데 요새는 너무 없다"며 "근처에 원룸 하는 사람들도 직장인들로 방을 채운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 씨는 "IMF 이전부터 장사한 집은 우리집 포함해서 딱 두 집 뿐"이라며 "이 근방에서 최고로 오래 장사했는데 요새는 노량진이 노량진같지가 않다"고 하소연했다.

4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30대 김모 씨도 "올해 특히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코로나19가 끝나고 나서 지난해 초부터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요새는 더 줄었다"며 "그저께는 물건만 받아놓고 일찍 문을 닫는 등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모습. /김시형 기자
2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모습. /김시형 기자

올해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사혁신처가 지난 20일 발표한 2024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 채용시험 최종 합격자는 4861명이다. 지난 1월 원서를 접수한 인원은 10만3597명으로 약 21.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992년 경쟁률 19.3대 1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내달 27일 1차 시험을 앞둔 7급 공무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달 20일 국가공무원 7급 공채시험 응시원서 접수 결과 선발 예정인원 654명에 총 2만6532명이 지원해 약 40.6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난해 2만9086명에 비해 지원자가 약 8.8% 감소했다. 7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21년 47.8대 1까지 오른 뒤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노량진 학원가에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이 사라지면서 곳곳에는 공실인 상가도 많았다. 폐업 후 철거 중인 곳도 눈에 띄었다. 인근 카페 사장은 "제 가게 주위에도 공실이 널려있지 않냐"며 "이게 다 작년부터 서서히 줄어든 것"이라고 전했다.

노량진역 앞 대로변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송모(51) 씨는 "재건축 지역도 아닌데 폐업한 곳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송 씨는 "올해 1월부터 부동산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이미 문을 닫고 있던 가게들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폐업 상태"라며 "새 가게도 들어오지 않고 있고, 제가 들어온 이후 새로 폐업하는 곳은 나날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원래 대로변은 제일 장사가 잘 되는 곳이지 않냐. 여기도 대로변인데 제 옆 가게도 비어 창고로 쓰고 있고, 다른 가게들도 1층인데 다 비어있다"며 "골목은 어떻겠나. 골목 상권 2층은 특히 더 심하다"고 덧붙였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 한 골목에 폐업한 상가가 철거되는 모습./김시형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 한 골목에 폐업한 상가가 철거되는 모습./김시형 기자

줄폐업 여파는 부동산 업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 공시생들로 주를 이뤘던 노량진 신축 오피스텔은 직장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의가 없어 문을 닫은 부동산도, 아예 폐업한 부동산도 늘고 있다.

송 씨는 "신축 오피스텔은 대부분 직장인들이 계약하는 추세다. 옆 오피스텔 최근 계약건 중 학생은 딱 한 건 뿐"이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동산 사무실도 폐업하는 곳이 많다"고 귀띔했다.

27년째 대형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송모(70) 씨는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일 때 이곳에 왔는데 이제는 39살이 됐다"며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는 게 처음이다. 우리도 원래 오전 7시30분~8시 이른 아침에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오전 11시에 연다"고 말했다.

그는 "IMF 이후에 임용고시로 사람을 많이 뽑을 땐 여기에 하루 평균 1만3000명 가까이 드나들어서 골목을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였다"며 "우리 가게도 원래는 현재의 3분의 1 규모로 시작했지만 증축했고, 목욕탕이었던 바로 옆 상가도 학원 건물로 바뀌는 등 학생들이 많아질 땐 상권도 많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여기가 학생들 특화 상권인 만큼 우리 상인들도 남아있는 학생들을 위해 재료 하나라도 신선한 걸로 준비하고 반찬 하나라도 더 신경쓰면서 따뜻한 활기를 되찾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컵밥거리 노점상인도 "노량진이 지금은 잠깐 주춤하는 시기지만 워낙 물가가 싸고 음식도 맛있는 동네라 조만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예전의 노량진으로 다시 활성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rocker@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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