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건설현장, 주차요원, 전단지 알바 고충
열악한 현장…그늘도 없고, 냉방기기도 마땅찮아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20일 오전 8시30분 서울 송파구 복합물류단지에서 택배기사들이 상품을 옮기고 있다. /이윤경 기자 |
[더팩트ㅣ장혜승·조소현·황지향·이윤경 기자] "땡볕에서 일할 땐 일사병이 걱정입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도 사우나가 따로 없습니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20일 오전 8시30분 서울 송파구 복합물류단지. 이른 시간이었지만 실내온도는 이미 30도를 웃돌았다.
이동식 레일 위로는 다양한 크기의 택배상자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택배기사 20여명은 부지런히 상품들을 분류하며 땀을 닦기 바빴다. 무더위에도 내부 먼지 때문에 손수건으로 입을 감싸야 했다.
택배기사 공모 씨는 "땀을 흘리다 보니 보름동안 8㎏이 빠졌다"며 "갑자기 살이 빠지니 건강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 "배달 늦을까 쉴 수 없어"…퇴근하면 땀범벅 택배기사들
올여름 때 이른 불볕더위가 지속되면서 야외 노동자들은 연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냉방기기는 물론, 그늘 한 점 없는 현장이 일터인 이들은 일제히 "더워도 참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송파 복합물류단지에 비치된 냉방기기는 레일 양옆에 위치한 대형 선풍기 두 대뿐이었다. 택배차량 12대가 들어갈 정도의 넓은 작업장이라 선풍기 두 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작업에 열중하는 택배기사들에게는 희미한 바람만 닿을 뿐이다. 그마저도 쌓여 있는 택배상자들이 바람을 가로막았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천막도 들어오는 열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택배기사들은 팔에 쿨토시를 끼고 개인용 선풍기를 틀며 더위를 달랬다. 간간이 얼음물로 목을 축이는 수밖에 없었다.
본격 배달을 시작하면 더 극한상황이다. 오전 11시께 작업장을 나온 김모 씨는 담당 지역인 강동구 일대로 향했다. 김 씨는 10~20m 간격으로 차량을 멈추며 탑승과 하차를 반복했다. 길게는 20분 정도 차량을 세워두고 5군데나 되는 배달 장소를 걸어다녀야 했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 복합물류단지의 온도계가 30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윤경 기자 |
김 씨는 "택배상품을 꺼내고 운반하느라 차량 에어컨을 켜는 게 의미가 없다"며 "벙거지 모자 하나만으로 땡볕 더위를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 박모 씨는 "배달 속도가 지체될까봐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없다"며 "그늘에 있을 때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잠깐 숨 돌리는 정도인데, 퇴근하고 나면 땀에 절어있다"고 토로했다.
◆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땀"…건설 현장은 열기 '펄펄'
폭염에 대책없이 노출되기는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는 노동자 수십명이 벽돌을 옮기고 땅을 파는 등 작업에 한창이었다. 최고기온 33.7도의 땡볕 아래서 연신 허리를 굽혔다 펴느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 노동자는 팔 소매로 닦아내기 무섭게 안전모 아래로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먼지와 햇빛을 가리기 위해 눈을 제외하고 얼굴 전체를 마스크 등으로 감싼 모습이었다. 열기로 달궈진 아파트 외벽을 칠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공사장 입구에서 차량을 통제하던 신호수는 조금이라도 더위를 식혀보려 호스를 연결해 공사장 주변 도로에 물을 계속 뿌렸다. 도로 위 열기에 덤프트럭과 레미콘 등 공사차량이 오가면서 물을 뿌린 지 불과 10여분 만에 땅은 마르기 시작했다.
1시간가량 작업을 마친 뒤 노동자들은 안전모를 벗어놓고 공사장 밖으로 나와 담배로 고통을 달랬다. 일부는 더위를 피해 인근 카페로 피신하기도 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로소 미소를 되찾았다.
A 씨는 "머리끝부터 발바닥까지 땀이 난다"며 "이런 날에 일하려니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A 씨가 안전모를 벗자 머리는 흠뻑 젖어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에 따르면 체감온도 33도 이상이거나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매시간 10분씩 그늘이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무더위 시간대인 오후 2~5시에는 옥외작업을 단축하거나 작업시간대를 조정해야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의 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신호수가 열기를 식히기 위해 도로에 물을 뿌리고 있다. /황지향 기자 |
◆ 쉴 틈 없는 주차요원·전단지 알바…아스팔트 위 그늘도 없어
같은 시간 인근 대형마트 야외 주차요원 B 씨도 폭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B 씨는 도로에 인접한 골목에서 양손에 안내봉을 들고 끊임없이 팔을 흔들며 행인과 차량을 통제했다.
그늘 한 점 없는 도로 위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인도에 설치한 파라솔 아래뿐이었다. 그마저도 사람 한 명 들어갈 정도 크기에 불과했다. 의자도 없었다. B 씨는 차량이 들어오지 않는 틈을 타 잠시 파라솔 아래로 자리를 옮겼지만 차량이 골목에 들어서자 이내 그늘 밖으로 나왔다.
B 씨는 "파라솔 아래 계속 있을 수는 없다"며 "움직여야 하는 업무 특성상 끊임없이 그늘과 햇빛을 오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 앞 먹자골목에서 만난 50대 C 씨는 전단지를 배포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쪽 팔에 걸친 가방 속 전단지는 한눈에 봐도 족히 몇백 장은 돼 보였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뜨거운 날씨에 C 씨 얼굴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수건을 목에 둘러도 얼굴의 땀은 줄줄 흘러 등을 적셨다. 10명 중 2~3명이 전단지를 받을 뿐이지만 C 씨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C 씨는 "오늘이 특히 더운지는 모르겠다. 맨날 밖에서 일해서 감이 없다. 그래도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