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살해' 이틀 만에 피해자 얼굴까지…흉악범죄보다 무서운 '신상털기'
입력: 2024.05.09 16:25 / 수정: 2024.05.09 16:25

무분별한 피의자 신상 폭로
피해자·가족 정보까지 유출
"사적 제재 우려" 전문가 지적


지난 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최모(25) 씨가 구속된 가운데 온라인에서 그의 신상과 사진 등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약 4년 만에 범죄 혐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교도소까지 재등장해 과도한 신상털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의 사진과 SNS 계정까지 유포되면서 유족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 캡처
지난 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최모(25) 씨가 구속된 가운데 온라인에서 그의 신상과 사진 등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약 4년 만에 범죄 혐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교도소까지 재등장해 과도한 '신상털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의 사진과 SNS 계정까지 유포되면서 유족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 캡처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지난 6일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한 최모(25) 씨가 구속된 가운데 온라인에서 신상과 사진 등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약 4년 만에 범죄 혐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교도소까지 재등장해 과도한 '신상털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의 사진과 SNS 계정까지 유포되면서 유족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온라인 중심 개인정보 유출 일파만파…2차 가해도

9일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건 발생 이틀 만인 전날부터 최 씨의 신상정보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최 씨가 서울의 한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것부터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사실, 출신 지역 및 학교, SNS 계정과 사진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됐다. 최 씨가 과거 수능 만점자로 여러 매체와 했던 인터뷰가 빌미가 됐다.

심지어 디지털교도소까지 4년 만에 다시 등장, 최 씨의 신상을 공개했다. '여친 살해 수능 만점 의대생 최○○'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는 최 씨의 사진과 개인정보가 상세히 적혀있다. 댓글에는 "최 씨 부모의 사진을 공유한다"며 링크를 올리는 네티즌도 있었다. 지난 2020년 처음 등장한 디지털교도소는 범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 신상까지 공개했다가 '사적제재' 논란으로 같은 해 폐쇄됐다.

불특정 다수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유출은 2차 가해를 낳았다. 최 씨 신상 정보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신상 정보도 함께 노출됐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최 씨와 함께 찍은 피해자의 사진과 SNS 계정이 공유됐고, 추측과 억측, 조롱과 비난의 댓글이 잇따랐다.

급기야 자신을 피해자 친언니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가족이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며 "동생의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동생 계정을 비공개 또는 삭제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계속 오류가 걸려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부디 억측은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2차 가해에 "고인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모욕죄로 신고했다. 선처는 절대 없다. 댓글 달 때 한 번 더 생각하고 달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현행법상 당사자 동의 없이 제3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신상을 유포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오는 13일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접속차단 조치를 통신심의소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피해자 친언니라고 소개한 한 이용자는 동생의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동생 계정을 비공개 또는 삭제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계속 오류가 걸려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부디 억측은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남용희 기자
피해자 친언니라고 소개한 한 이용자는 "동생의 신상이 퍼지는 것을 막고자 동생 계정을 비공개 또는 삭제하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계속 오류가 걸려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부디 억측은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남용희 기자

◆ 전문가들 "신상털기, 불필요한 정보로 본질 흐려"

전문가들은 사적제재가 대중의 응징 욕구를 충족해주는 측면이 있지만 불필요한 정보에 지나치게 집중돼있어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워낙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사적 응징 욕구가 나오는 대중의 심리가 이해된다"면서도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에서 어떤 판결을 받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무분별한 사적제재는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사건의 본질은 교제 폭력 예방 시스템 미비에 있는데 사적제재는 흥미 위주의 개인사 등에 치우쳐 있다"며 "수능 만점자, 명문대 의대생 등과 같은 개인 가십, 범죄자의 서사 등은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국민 의식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건 경각심을 갖고 입법이 미비한 부분이 있으면 공백을 메우는 것"이라며 "피해자들이 구호 요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호 요청이 왔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신영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오후 살인 혐의를 받는 최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열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최 씨는 지난 6일 오후 5시께 서초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연인인 B 씨에게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최 씨는 "헤어지자는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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