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에 욕 먹고 맞는 경찰관...보호 면책 규정은 '요원'
입력: 2024.01.15 16:39 / 수정: 2024.01.15 16:39

"적대적 주취자 보호 어려워"
보호 업무 범위 확대 이중고
주취자 보호 법 개선 목소리


15일 일선 경찰관들은 벌금형이 나온데 대해 경찰 치안 공백도 우려했다.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 /더팩트 DB
15일 일선 경찰관들은 벌금형이 나온데 대해 '경찰 치안 공백'도 우려했다.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 /더팩트 DB

[더팩트ㅣ황지향·조소현 기자, 이윤경 인턴기자] #.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A 경사와 B 경장은 지난 2022년 11월 주취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술에 취한 60대 남성 C 씨를 강북구 자택 문 앞까지 데려다줬다. 6시간 넘게 문 앞에 그대로 있던 C 씨는 같은 날 오전 7시께 숨진 채 발견됐다. 두 경찰관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서울북부지법은 "사망 예견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구호 조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 이들에게 각각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술취한 시민을 보호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현장 경찰관들이 소송이나 진정 등에 휘말리면서 공무집행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주취자에게 체계적인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주취자 보호는 경찰의 고유 업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4조에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보호조치 하도록 규정됐다.

일부 해외 선진국들은 주취자에 대한 경찰관 직무집행을 놓고 면책권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경우 '주취자유치법'에 주취자 유치 관련 경찰 업무수행에 대한 소추 면책권이 담겨 있다. 호주 캔버라주 '주취자 관리·보호법'에도 경찰관 직무수행에 대해 소추와 재판 등의 면책권이 보장된다.

국내의 경우 이같은 면책 조항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선 경찰관들은 주취자 보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강원 지역 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주취자의 경우 술 먹고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아서 인적사항 확인도 힘들다"며 "적대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보호조치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서울 지역 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또 다른 경찰관은 "주취자 출동은 대화도 잘 안 통하고 인사불성에 가끔 욕하거나 때리기도 해서 매우 힘든 업무"라며 "그래도 2차 사고가 나면 안 되니 최선의 조치를 하기 위해 신경쓰고 있다"고 전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집 문 앞까지 데려다 준 주취자가 사망한 사건에 해당 경찰관들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아쉽다는 반응이다.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남용희 기자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집 문 앞까지 데려다 준 주취자가 사망한 사건에 해당 경찰관들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아쉽다는 반응이다. 사진과 기사는 무관함/남용희 기자

더욱이 A 경사와 B 경장의 경우처럼 벌금형 등 유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 피소를 우려한 소극적 대응 및 치안 공백 우려까지 제기된다. 서울 지역 다른 지구대에서 근무 중인 경찰관은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그 순간 최선의 조치를 했을 텐데 이런 판결이 나와서 아쉽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지구대·파출소에서 주취자 관련 신고가 50%를 넘는다. 유흥가가 껴있는 관할은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며 "이런 판결이 나온다면 앞으로 주취자 하나하나 전부 돌보게 돼야 하므로 인력 부족은 불 보듯 뻔하고 경찰 치안 공백도 우려된다"고 하소연했다.

부산의 한 경찰서 소속 직원 역시 "이번 판결이 보호조치 업무 범위를 확대했으니 현장 경찰관의 부담이 더 커졌다"며 "약식명령의 벌금이 한 달 월급보다 많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일선 현장에선 경찰관이 주취자를 대상으로 당당히 대응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6월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경찰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와 소방, 의료기관이 역할을 분담해 주취자 이송·치료·보호시설 운영 등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장 경찰관들은 지난해 10월 경찰제도발전위원회에서 "주취자 관련 법령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며 "주취자 관련 사고가 있더라도 일정한 요건 하에 경찰관의 책임을 면제할 수 있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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