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 임금 공개 세계적 추세에 '역행'
법안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 상임위 계류
잡코리아와 사람인 등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광고를 낸 기업들 상당수가 연봉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 DB |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 최근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입사한 정모(26) 씨는 실망이 컸다. 서류전형과 1·2차 면접 등 3차례에 걸친 어려운 전형 과정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지만, 연봉은 30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입사 지원할 당시 채용공고 연봉란에는 '회사 내규에 따름'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 씨는 "막상 계약서를 쓸 때 최저임금이라고 통보를 받았다"며 "충격이 컸지만 공백기를 줄이기 위해 일단 다니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9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잡코리아와 사람인 등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광고를 낸 기업들 상당수가 연봉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회사 내규에 따름'이나 '면접 후 결정'이라고만 안내했다.
구직자들은 한목소리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연구개발(R&D) 계열 신입사원 모집을 준비하고 있다는 조모(25) 씨는 불투명한 임금에 지원을 망설이게 된다고 털어놨다. 조 씨는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기업이거나 '블랙(악덕)기업'일 것 같다"며 "연봉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원은 당연히 꺼려진다"고 했다.
정 씨처럼 취업이 급한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우선 입사하는 경우도 많다. 영상업체 입사에 성공한 김모(27) 씨는 면접 중 연봉이 2700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합격을 위해 주는 대로 받겠다고 했다. 김 씨는 "시작부터 회사는 '갑'인 것 같다. 체감상 80%의 기업이 연봉을 명시하지 않았는데, 그만큼 싼 값에 부려먹은 수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씁쓸히 웃었다.
현재 회사에 재직하면서 광고홍보업계 중고신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A(26) 씨 역시 "지금 회사에서 받는 연봉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알 수 없어서 지원이 망설여진다"고 하소연했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업들 중 상당수가 연봉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잡코리아에 올라온 채용공고 중 일부 /잡코리아 캡쳐 |
투명한 임금 공개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뉴욕시는 지난 2022년부터 '급여투명화법'을 시행했다. 이 법에 따르면 4인 이상 기업은 채용광고에 임금의 하한액과 상한액을 명시해야 한다. 독일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키고자 지난 2018년부터 임금공개법을 시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지난 2018년 직업안정법을 개정해 근로조건을 명시하도록 규정했다. 위반 시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3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채용 시 임금 공개를 해야할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있지만 임금 공개를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채용절차법은 거짓 채용공고를 금지할 뿐 어떤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임금 비공개를 거짓채용이라거나 위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4월 채용공고 시 임금 공개를 정책화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까지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그나마도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임금 공개 강제 조항이 없다. 개정안은 '구인자는 채용광고에 업무 내용 및 근로조건 등을 제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만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만 임금 등 필수 근로조건을 '회사 내규에 따름', '협의 후 결정'과 같이 추상적으로 기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최 노무사는 "구직자가 다양한 정보를 놓고 비교·선택하려면 정확한 조건은 추후 협의하더라도 적어도 상한액과 하한액 구간을 보여주는 식으로 임금을 제시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