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 청년의 연말…"내년엔 사회로 나가고 싶어요"
입력: 2023.12.27 00:00 / 수정: 2023.12.27 00:00

은둔 청년 24만 명 추정…취업 등 경제적 여건 원인

올 한해가 열흘 남짓 남았던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오전부터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날 센터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쿠킹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조소현 기자
올 한해가 열흘 남짓 남았던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오전부터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날 센터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쿠킹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조소현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2023년을 열흘 남짓 남긴 지난 20일 서울 성북구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오전부터 분주했다. 센터 안에는 20~30대 10여명이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밥을 반죽하고 계란과 단무지, 당근 등 재료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참기름 좀 줘요", "햄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등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 김밥을 만들면서도 이들은 쉴 새 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모두 본인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소개했다.

◆3년 넘게 친구들과 연락 단절…취업 안 되니 사람 피해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지난해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다. 은둔형 외톨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고립돼 주로 집에서 6개월 이상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센터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회복과 자립을 돕기 위해 공동숙소생활을 지원하고 글쓰기 수업 등 다양한 회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날도 센터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들의 정기 모임이 열렸다. 쓸쓸한 '혼밥'이 아닌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쿠킹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날 모인 은둔 청년들의 모습은 또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임신·출산·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집에만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2.4%다. /조소현 기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19~34세 청년 중 '임신·출산·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집에만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2.4%다. /조소현 기자

보건복지부가 19~34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출산·장애 등 특별한 이유 없이 거의 집에만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2.4%로 집계됐다. 이를 청년 인구에 적용하면 은둔 청년은 24만4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청년들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여건이다. 복지부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은둔 원인 1위가 취업의 어려움이었다.

지난 5월 센터에 입소한 김동욱(31) 씨도 직장을 그만두면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 2020년부터 3년 반 동안 친구들과 연락 한번 안 했다는 김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리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마찰이 잦았고 상처를 받아서 일을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잠시 쉴 생각으로 그만뒀던 일이었지만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김 씨는 "다시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심화했다"며 "그럴수록 사람들을 피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센터에 입소한 이모(31) 씨도 비슷했다. 경기 평택시에서 시스템 에어컨 관련 일을 했다는 이 씨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직장을 잃었다. 이 씨는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쉽지 않았다"며 "돈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지 않게 됐다"고 했다. 이 씨는 3년 동안 은둔 생활하며 우울증까지 얻었다.

◆은둔 청년 80% 이상 "상황 벗어나고 싶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 1만2105명 중 80.8%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이들은 필요한 도움(중복응답)으로 경제적 지원(88.7%)과 취업 및 일 경험(82.2%) 등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사회와 단절됐던 은둔형 외톨이들이 사회에 재진출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인철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취업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고 돈이 없으니까 친구를 만날 수 없게 된다"며 "실제 은둔형 외톨이들을 만나보면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목소리들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이 은둔 생활을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며 "다만 대안을 찾고자 할 때 비용이 발생하는데, 부모님께 달라고 할 수는 없어서 도전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취업을 하고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드머니'를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씨와 이 씨도 2024년에는 다시 한번 사회에 나가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 씨는 "센터에 오기 전보다 많이 밝아지고 차분해진 것 같다"며 "주변 사람들도 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내년에는 다시 취업에 도전해 볼 예정"이라고 했다. 이 씨 역시 "몇 년 전에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지금은 많이 회복됐고 일자리를 찾아 볼 용기도 생겼다"며 "내년에는 공부도 하고 취업도 시도해 보려고 한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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