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유리장에 들어간 라쿤, 미어캣…폐업 위기에 업주들은 '하소연'
입력: 2023.12.18 00:00 / 수정: 2023.12.18 00:00

'불법'된 야생동물 카페…먹이 주고 만지는 것도 금지

지난 14일은 개정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이 시행된 첫날이었다. <더팩트>가 방문한 서울 근교 야생동물 카페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붐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 14일은 개정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이 시행된 첫날이었다. <더팩트>가 방문한 서울 근교 야생동물 카페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붐볐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만지고 귀여워해줄 수 있을 줄 알고 왔는데, 보는 것만 가능하네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된 지난 14일 오후 1시 학교 체험학습 때문에 서울의 한 라쿤카페를 찾았다는 김도연(16) 양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개정안 시행으로 이날부터 동물카페 등 동물원·수족관을 제외한 시설에서 살아있는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것이 금지됐다. 먹이를 주거나 만지는 등 체험활동도 금지된다. 기존에 운영되던 시설의 경우 4년의 유예기간이 적용돼 2027년 12월13일까지만 전시 가능하다. 단 유예기간에도 야생동물에 대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가하는 올라타기, 만지기 등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날 라쿤카페에는 김 양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야생동물을 보고 만지고 싶어 방문한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라쿤 2마리는 모두 유리로 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 손님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라쿤을 보기만 하며 음료를 마시고 보드게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다른 동물카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울 유명 동물카페들에는 수능을 마친 수험생부터 20~30대 커플, 외국인 등이 줄을 이었지만 야생동물을 만지지 못한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야생생물법 개정으로 인해 만지거나 먹이를 줄 수 없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의 한 라쿤카페 라쿤 2마리는 모두 유리장 안에 있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서울의 한 라쿤카페 라쿤 2마리는 모두 유리장 안에 있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

서울의 또 다른 동물카페도 미어캣 10마리를 모두 유리장 안에 가둬놨다. 카페 직원은 미어캣에게 먹이를 줘도 괜찮냐는 손님의 물음에 "교감은 할 수 있지만 먹이를 줄 순 없다"고 설명했다. 미어캣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 원하는 손님들은 주의사항을 들은 뒤에야 유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직원은 "미어캣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상 들어올리거나 큰 소리를 내지 말아달라", "먼저 다가오는 미어캣들과 교감해 달라"고 당부했다.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 미어캣들을 바라보며 웃다가도 혹여 미어캣들이 놀랄까 곧바로 숨을 죽였다.

◆ 진일보한 법인데…"동물원 허가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생물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2월13일 공포됐다. 정부가 동물권 보호를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동물보호 단체들은 진일보한 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야생동물을 이용해서 상업적 행위를 하는 것에 규제를 가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법"이라고 평가했다. 최인수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도 "카페 시설 자체가 여러 가지 문제와 위험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며 "업주들이 곤란한 부분도 있겠지만 해당 법이 공포된 후 1년 간의 신고기간, 4년 간의 유예기간을 주는 등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야생동물 전시 시설을 운영하던 업주들은 폐업 위기에 놓였다며 하소연했다. 서울에서 미어캣카페를 운영하는 A 씨는 "법이 개정됐으니 카페를 접어야 할 것 같다"며 "동물원 형식으로 다른 지역에서 (업체를) 다시 차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 시설이 운영을 계속하려면 동물원으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용도를 바꿔 시설 재공사를 하고, 수의사를 갖춰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주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인천 계양구에서 8년째 라쿤카페를 운영 중인 B(62) 씨도 "지난 9월 전시금지종을 신고해 현재 유예한 상태"라며 "당분간 크게 다른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할 것 같진 않지만, 후에 과태료를 내야 하면 결국 가게를 그만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했다. B 씨는 "(유예기간 동안) 국민신문고 등에 관련 입장을 게재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업주들은 억울함도 토로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허용되고, 같은 야생동물이더라도 앵무새나 독이 없는 뱀 등은 금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라쿤이나 미어캣 등도 반려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B 씨는 "아이들(라쿤들)이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야생성을 잃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며 "강아지와 고양이도 밖에 있으면 들개, 길고양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이들도 다른 반려동물과 같이 손님들이 간식을 주고 만져주는 것을 좋아한다.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면 굉장히 좋아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sohyun@tf.co.kr

bsom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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