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먹고사는 청년…MBTI 이어 생활기록부 '2030 열풍'
입력: 2023.10.08 00:00 / 수정: 2023.10.08 00:00

서버 다운될 만큼 생기부 발급 급증
SNS에 생기부 사진 공유하며 '힐링'
불투명한 미래에 자기 확인 욕구 작용


생기부는 초·중·고등학교 학적과 수상내역, 생활 태도 등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문서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이나 정부24 홈페이지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생기부는 초·중·고등학교 학적과 수상내역, 생활 태도 등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문서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이나 정부24 홈페이지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조용하고 온순하며 주변 정리가 깔끔하다. 말없이 올바르게 실행하는 모범 어린이입니다.'

최근 2030세대에서 생활기록부(생기부)를 발급받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게 유행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청년층의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8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정부24와 무인민원, 창구 등을 통해 발급된 생기부는 총 285만7689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동기간(46만6182건)에 비해 약 6.1배 급증한 것이다. 지난달 정부24에서 발급한 생기부만 219만974건에 달했다.

지난달 5일에는 정부24 생기부 조회 홈페이지에 접속자가 몰려 일시적으로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인스타그램 등 각종 SNS에서는 수천 개의 생기부 인증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을 통한 생기부 발급은 2003년 이후 졸업생부터 가능해 2030세대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생기부가 전자화되기 전인 40대 이상은 발급이 불가능하다.

생기부는 지난 2019년 7월부터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이나 정부24에서 발급받을 수 있게 개선됐다. 정부24 홈페이지 통합검색창에 생활기록부를 입력한 뒤 공인인증 절차를 거치면 약 3분 만에 학창시절 자신의 모습이 담긴 생기부를 받아볼 수 있다. 이전까지 학교 행정실을 방문해야만 받을 수 있었던 생기부를 온라인에서 간편히 발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30세대 사이에서는 생기부를 발급받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게 유행이다. 이들은 생기부를 조회하며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을 회상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박헌우 기자
2030세대 사이에서는 생기부를 발급받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게 유행이다. 이들은 생기부를 조회하며 어린 시절 자기 모습을 회상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박헌우 기자

생기부를 발급받아 SNS에 공유한 이들은 '학창시절을 추억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생기부를 조회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나연(29) 씨는 "학창시절을 추억하고 싶고 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써주셨는지 궁금했다"며 "어릴 적 꿈이라든지 특기 등 잊고 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좋게 보고 좋게 기억해줬다는 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언지(29) 씨는 "생기부에 장단점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며 "'나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이모(27) 씨도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정말 안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반성했다"며 "더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생기부는 초·중·고등학교 학적과 수상내역, 생활 태도 등 학교생활 전반이 기록된 문서다. 학창시절 생활 태도나 성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에는 각 학년 담임교사가 기록한 성격 특징이나 행동 특성이 열거돼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생기부 발급이) 챌린지처럼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선생님들이 써주신 내용을 보고 힐링을 했다는 의견이 많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기부 발급 유행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청년층의 심리가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에 재밌었던 일, 즐거웠던 일을 통해 자신감과 성취감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흔히 '소년은 꿈을 먹고 살고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주거와 직장, 결혼 등 현실적 문제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과거를 회상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젊은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 불안해한다"며 "불안정하다 보니 자신을 확인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MBTI와 선생님이 작성해 준 생기부 등이 유행하는 것도 '난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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