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49재 '공교육 멈춤의 날'
오전부터 서이초·신목초 곳곳 추모 물결
오후 여의도 추모집회엔 5만명 참석
서이초 교사의 49재이자 '공교육 멈춤의 날'인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김세정·조소현 기자, 이장원·황지향 인턴기자] "학부모로서 미안합니다. 편히 쉬세요." "선생님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4일 서울 서이초 교정 곳곳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한 장 가벼운 종이지만, "미안하다" "편히 쉬시라" 글자마다 슬픔과 울분이 담겨 있다. 지난 7월18일 숨진 서이초 교사의 49재 날이자 '공교육 멈춤의 날'인 이날 이른 오전부터 학교는 추모객으로 가득 찼다.
학교 건물 오른편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따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얀 국화꽃과 추모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을 손에 들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30년차 교사 A씨는 "위험을 감수하고 왔다"며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힘들어한다. 선배 교사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죄송하다.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토로했다.
11년차 교사 최모 씨는 "언제라도 내 일이 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며 애석한 마음을 털어놨다. 학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경기 안산의 초등학생인 김모(12) 군은 "선생님이 학교를 마치신 뒤에 편하게 (추모에) 동참하시라고 짐을 덜어주고자 체험학습을 썼다"며 "선생님께서 하늘에서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라고 애도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학교 대강당에선 고인의 '49재 추모제'가 열렸다. 유가족과 동료 교사, 선후배 등 140여 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대학 후배 C씨는 "눈을 감겠다고 결심했을 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지 상상조차 안 간다. 힘이 돼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흐느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가장 앞장서서 선생님을 지키고 보호해야 하는 교육감으로서 가늠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낀다. 학교와 선생님 없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월 숨진 서울 서이초 교사의 '49재 추모제'가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가운데 동료 교사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헌우 기자 |
일부 교사들은 추모제에 참석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추모사를 읽는 이 부총리를 향해 '공교육 정상화, 건강한 학교, 행복한 학교, 더 나은 미래,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팻말을 치켜 들었다. 이들은 추모제 후 "전날까지 징계를 운운했으면서 여기 와서는 마치 교사들의 아픈 부분을 공감하는 것처럼 얘기하신 것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양천구 목동 신목초에도 추모행렬이 계속됐다. 극단적 선택을 한 신목초 교사의 발인 다음날인 이날 오전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학교 앞을 찾았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시끌벅적함 대신 한숨 소리가 학교 앞을 가득 채웠다. 학교 정문에는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동료 교사들이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교문 앞 길목으로 늘어선 화환을 본 시민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 했다.
동료 교사부터 어린 자녀의 손을 잡은 학부모까지 추모객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교사 D씨는 "서이초 교사의 49재이기도 하고 계속 반복돼 오늘은 용기 내서 와보게 됐다"며 "공교육이 하루빨리 정상화됐으면 좋겠고 (학교가)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다 안전하고 즐겁게 교육받는 현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추모 공간에 오기 위해 가정학습을 신청했다는 한 학부모는 "악성 민원이 너무 많이 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안타깝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 신목초등학교 소속 초등교사 A씨가 극단 선택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3일 오후 시민들이 신목초등학교 추모 공간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추모를 마친 교사들은 오후 4시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추모집회로 향했다. 늦은 가을 더위에도 오후 2시부터 국회 앞 도로는 점점 검게 물들어 갔다. 교육부의 징계 경고도 교사들의 들끓는 분노를 막지 못한 모습이었다.
병가를 내고 왔다는 교사 E씨는 "서이초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에 저도 같은 생각을 했다. (교육 현장이) 바뀌어야 아이들도 지킬 수 있고, 선생님들도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눈물을 보였다. 경기 고양의 중등 교사인 60대 오모 씨는 이날 단축수업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오씨는 "(학교에서는) 잘 다녀오라고 응원을 해줬다. 교사에겐 교습권하고 생활지도권이 보장돼야 하고, 수업과 생활지도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교육 시스템을 좀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 동탄에서 온 10년차 교사 박모 씨는 "어린 선생님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왔다. 이런 집회에 참석해 추모를 해야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왔다는 30대 여교사 F씨는 "이 자리는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병가를 내고 서울에 왔다. 주변 동료들은 불이익을 받을까 봐 참여를 많이 하지 못했다"며 "항상 역사는 옳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믿는다. 제가 이렇게 나서면 분명 더 좋은 세상, 더 좋은 교육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 모임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가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를 열고 손피켓을 들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예원 인턴기자 |
국회 앞 대로에서 시작된 검은 물결은 오후 5시께 여의도 일대를 뒤덮었다. 평일임에도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의 인원이 모였다. 이들은 손팻말을 들고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회자는 "고인이 하늘의 별이 돼 곁을 떠난 지 49일이 지났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고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며 "9월4일은 끝이 아닌 시작의 날이다. 대한민국 교사의 이름으로 오늘을 공교육 정상화 시작의 날로 선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