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 49재 '끝없는 추모행렬'…"위험 무릅쓰고 왔어요"
입력: 2023.09.04 15:11 / 수정: 2023.09.04 15:11

교사들 병가내고 추모식 참석…"바뀐 것 없어" 탄식도

지난 7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지난 7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숨진 서울 서초구 서이초 20대 교사의 49재인 4일 학교에는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49일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학교였지만 이제는 교문 앞부터 화환이 놓여 있는 낯선 풍경이다. 정문에는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오전 10시 학교 운동장은 추모객으로 가득 찼다.

20년 차 초등교사 A씨는 "극단 선택으로 사망한 교사들이 다 저 같다"며 "(잇따른 교사 사망 사건으로) 2학기 들어서는 제정신이었던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A씨는 "막내 선생님을 떠나보내 너무 미안하다. 교사들은 잘못한 학생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학교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추모공간은 학교 건물 오른편에 마련됐다. 공간에는 긴 탁자와 '잊지 않겠다', '마음 깊이 애도를 표현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탁자에는 하얀 국화꽃 다발이 놓여 있었으며 팻말 위에는 '그곳에서 편안하라'는 추모의 글귀부터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저 참으려고만 하고 먼저 나서서 고칠 생각을 못 했다. 더 나은 선배가 되겠다'는 반성의 글귀, '추모에서 그치지 말고 사회와 정책이 바뀔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는 다짐의 글귀까지 다양한 추모 쪽지들이 붙어있었다.

서울의 30년 차 초등교사 B씨는 오전 9시20분께 동료 교사들과 추모공간을 찾았다. B씨는 "위험을 감수하고 온 것"이라며 신원을 밝히기를 꺼렸다.

B씨는 "교권이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다 같은 마음으로 힘들어한다"며 "교육할 때마다 아동학대법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한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라는 말이 돈다. 아동학대법에 걸려서 직위해제가 되는 선생님들을 보면 무력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9재가 됐지만 변한 게 없다"며 "정부는 민원대응팀을 만든다고 했지만 그분들도 스트레스가 큰 상황으로 알고 있다. (악성민원) 문제를 누군가에게 떠넘기기보다는 아동학대법 개정이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지난 8월23일 학교장 책임하에 교감과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 5명 내외의 민원대응팀이 학교에 제기되는 민원을 통합접수·처리하는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B씨는 "선배 교사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 '공교육 멈춤의 날' 추모행동에도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지난 7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인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장윤석 인턴기자

병가를 내고 추모공간에 왔다는 11년 차 교사 최모 씨는 "이제껏 '어떡하냐'는 말만 반복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신 분이 생기니까 '나는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라도 내 일이 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 역시 정부 대처에 불만이 많았다. 그는 "선생님들이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악성'인 민원을 제지해달라는 것인데, 정부는 민원창구를 만든다든지 해서 누구 한 명에게 민원을 다 받아내라고 하고 강요하고 있다. 이같은 방법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안산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모(12) 군은 부모에게 부탁해 추모공간에 왔다. 김 군은 "선생님이 학교를 마치신 뒤에 편하게 (추모에) 동참하시라고 짐을 덜어주고자 체험학습을 썼다"라며 "학생이지만 선생님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대신 죄송하다. 선생님께서 하늘에서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다"라고 애도했다.

서울 한 지역의 교육지원센터에 다니는 권모(31) 씨도 "'나는 해당되지 않겠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일했던 게 너무 미안하다. (교육 현장을) 바꿔 나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울먹였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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