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종 사건에 '불안' 강조…휴대용 경보기 이용도
전문가들 "여성폭력 범죄로 인식 안 하는게 문제"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 최윤종(30)은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하고 싶어서 범행했다"고 말했다. /박헌우 기자 |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부모님께서 '일찍 다녀라', '밤길 조심해라' 이런 말씀 많이 하셨는데, 이젠 밤길만 조심해서는 안 되는 세상 같다."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 최윤종(30)은 경찰 조사에서 "성폭행하고 싶어서 범행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대낮에, 산책로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기존의 성폭행·살인 등이 주로 늦은 오후 시간 때, 외진 곳에서 발생했다면 이번 사건은 일상 공간에서 발생했다.
일상 공간이 범죄 현장이 되고, 불특정 여성을 노렸다는 점에서 공포는 더욱 크다. 신림역·서현역 흉기난동으로 남성들의 불안도 가중된 가운데 여성들의 불안감은 배가 됐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정모(29) 씨는 "관악산 사건 이후 성폭행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안부를 묻는다. 휴대용 경보알람기도 구매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여성이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그는 "잇따른 흉기난동 때문에 남성들도 살인 위협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도 "(남성이었어도) 성폭행 위협까지 느꼈을지는 의문이다. 강간을 목적으로 저질러진 범행인만큼 (최씨의 범행은) 여성에게 한정된, 여성을 본인의 성적욕구 충족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생각해 발생한 범죄"라고 말했다.
경기 김포에 사는 선모(26) 씨도 "언제, 어디서든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이젠 안전한 길이 어딘지도 모르겠다"며 "피해자가 (최씨를) 피했더라도 이후 지나가는 다른 '여성'이 피해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삶에 대한 분노를 풀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존재인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여성혐오 정서'가 깔려있다는 지적도 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 이은의 변호사는 "피의자의 범행 양태를 보면 단순 성폭행 범죄는 아닌 것 같다"며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서였다면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게 더 용이했을 것이다. 성매매를 할 수도 있었지만 피의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서 저항력이 약한 여성을 상대로 강간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선 폭력을 행사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노를 여성에게 풀고 이를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4일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 범죄 현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조소현 기자 |
등산로 사건을 신림역·서현역 흉기난동 사건과 묶어 '묻지마 범죄'로 통칭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대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묻지마 범죄에 관한 치안 역량 강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18일 등산로 성폭행 사건 현장을 찾아 "일련의 묻지마 범죄는 물론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범죄로 시민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며 "특별 TF(태스크포스)를 가동하겠다"고 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여성을 대상으로 범행이 발생했다면 알맞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여성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필요했는데 예산 문제로 (정책을) 실현할 수 없었는지 등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정치권이 여성폭력 범죄를 여성폭력 범죄로 인식하지 않아서 이같은 범죄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들어서 (여성폭력이 허용되는) 문화적 정당성이 생겼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던가, 여성안심귀가길이 필요 없다고 하는 주장 등이 사인을 줬고 정치적으로도 승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여성폭력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거나 관련 예산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91개 여성·인권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4일 '공원 여성살해 사건 피해자 추모 및 여성폭력 방치 국가 규탄 긴급행동'을 열고 국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며 정부에 성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