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 아냐' 민법 개정안 2년째 표류
학대 동물 구출하면 '절도죄' 형사고소 당해
지난해 동물보호법이 전면 개정됐지만 동물소유권을 박탈하는 '동물사육금지처분 명령제도'는 제외됐다. /김세정 기자 |
8월8일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정한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올해는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된 지 1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더팩트>는 개체수 조절 효과를 평가받는 급식소 운영의 실태와 동물학대 방지에 요긴한 민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2회에 걸쳐 살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황지향 인턴기자] 지난해 동물보호법이 전면 개정됐다. 반려동물 인식이 높아진 결과다. 하지만 당초 논의됐던 동물학대자의 동물소유권을 박탈하는 '동물사육금지처분 명령제도'는 제외됐다. 동물학대를 하다 적발된 이에게 소유권을 뺏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왜 이 제도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을까.
바로 동물의 법적 지위가 '물건'이기 때문이다. 물건 소유 규제가 개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법무부는 지난 2021년 10월 해당 조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국회를 맴돌고 있다.
◆불법번식장 고양이 구출해도 학대자에게 소유권
지난해 7월21일.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는 고양이 학대 제보를 받고 경찰, 서울 송파구청 관계자와 함께 송파구 한 다세대주택에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처참한 광경이 들어왔다. 방은 쓰레기로 가득했고, 불법번식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고양이들은 활기가 없었다.
30여 마리 중 3마리는 이미 숨졌다. 나머지 역시 심장병, 췌장염, 간암, 복막염, 항문낭과 생식기 염증 등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학대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비야사랑해'는 고양이들을 구출해 동물병원에 이송하고, 번식업자 A씨를 동물학대로 고발했다. 송파구청은 A씨를 상대로 긴급 격리 조치와 소유권 박탈 절차에 들어갔다.
A씨는 이같은 조치가 부당하다면서 행정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9개월의 시간이 소요됐고, 그동안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한 '나비야사랑해'는 고양이들의 입양공고도 올리지 못했다. A씨는 고양이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도 치료비는 내지 않았다. '나비야사랑해'는 1억원 상당의 병원비까지 납부했다.
지난 4월 A씨의 신청이 최종 기각되면서 '나비야사랑해'는 고양이들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되레 A씨는 지난달 경찰에 단체를 절도, 공문서위조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는 지난해 7월 21일 서울 송파구 A씨의 다세대주택에서 동물 학대 제보를 받고 경찰과 송파구청 관계자들과 현장을 찾아 구조했다. 사진은 해당 현장 중 일부. /나비야사랑해 홈페이지 갈무리 |
◆법적 지위 생겨야 상응한 처벌 가능
유주연 '나비야사랑해' 대표는 이러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현행법상 동물의 법적 지위가 물건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동물이 물건으로 정의되다 보니 동물학대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받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검거된 동물보호법 위반 사범은 1000명 이상으로 역대 최대치다. 10년 전 78명보다 10배 이상 늘어났다.
학대 가해자들은 늘어났지만 솜방망이 처벌은 여전했다. 최근 11년간 동물학대로 구속된 이들은 단 5명이었다. 경찰에 붙잡힌 피의자의 절반 정도만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동물단체들은 동물을 물건으로 보는 인식 개선을 위해 동물의 법적 지위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적 지위가 생긴다면 학대자 손에서 구출되는 것은 물론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한재언 변호사(동물보호연대 감사)는 동물의 소유권 문제에 대해 "개 농장에서 개를 구조할 때 보통 동물보호단체들이 농장주에게 '동물 학대로 처벌받고 싶지 않으면 소유권을 포기하라'고 제안한다"라며 "절도죄의 위험이나 학대범이 다시 데려가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법 개정이 되더라도 근본적인 해결법이 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한 변호사는 "법원이 동물 학대로 처벌할 때 동물 학대 행위자의 소유권을 제한하는 처분을 같이 내릴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산이 부족한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의 기능 강화를 위해서 동물보유세 제도 등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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