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수급·근로의욕 저하 개선 필요하지만
'시럽급여' 논란에 "당정 공감능력 의심"
"지급기간 늘리고 대상 확대해야" 반론도
지난 17일 오후 3시. 서울동부고용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 앞에는 몇 십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조소현 기자 |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서울 강동구에 사는 윤모(28) 씨는 최근 송파구 서울동부고용센터를 찾았다. 며칠 전까지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지만 최근 계약이 만료됐다.
2000번대 대기표를 받은 윤 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실업급여 신청 창구 앞에 섰다. 몇십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다.
차례가 되자 윤 씨는 실업급여 업무 담당자에게 퇴사 사유 등을 설명했다. 신청을 마친 후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윤 씨는 "언제 다시 취업할지 몰라 막막한 상황"이라며 "타지에서 와 고정지출은 계속 발생하는데, 어느 정도 수입이 있어야 취업 활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실업급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명품을 사고 여행을 갈 수 있지만, 저는 생계유지도 빠듯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30대 정모 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정 씨 역시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권고사직을 당했다.
정 씨는 "회사에서 잘려 다음 취업하기 전까지 모아둔 돈을 사용해야 한다"며 "당장은 문제없지만 앞으로 쉴 기간이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르겠다. (실업급여를 타는 게) 어떻게 유쾌하겠냐"고 반문했다.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
지난 12일 실업급여 최저선 하향 및 폐지를 추진하는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실업급여 수급자들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논란이 된 발언을 인용해 실업급여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실업급여는 노동자가 비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일정 기간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다.
실업급여의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월 184만원) 또는 전 직장 평균임금의 60%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누군가에게는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금액'이다.
정부·여당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반복수급자들이 많고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 노동자의 세후 월급(월 179만원)보다 많아 재취업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았다는 A(26) 씨는 "실업급여 타서 여행 가는 친구들을 봤다"며 "계약직 고용형태가 빈번한 요즘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나 악용 사례가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A씨 역시 처음에는 실업급여를 생계유지와 취업 준비를 위해 사용했다. A씨는 "월세와 식비 등을 해결했다. 토익, 토스 등 자격증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실업급여를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수급기간이 늘어날수록 근로의욕이 줄었다. A씨는 "수급기간이 두 달이 넘어가니 '이대로 계속 돈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실업급여를 받았을 때가) 코로나19가 심했을 때인데 구직 노력을 했다는 증거를 대면으로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등 검증이 느슨해졌다"고 털어놨다.
일부 전문가들은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반복수급자가 늘어나는 등 모럴해저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수급자가 문제라기보다는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인데, 반복수급을 제재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반복수급자를 대상으로 수급비율을 줄이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발언은 지극히 편향적이고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라며 "정부는 저소득 청년·여성들이 복지에 중독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소현 기자 |
일부 악용 사례를 일반화해 수급자들을 폄훼하거나 실업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 관계자의 발언은 지극히 편향적이고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라며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지 불안정 저임금 노동자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뒤흔드는 행위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도 "(당정이) 일부 사례를 지나치게 일반화하고 있다"며 "설사 여행가는 데 사용한다고 해도 재충전을 해야 다시 취업을 위해 달릴 수 있지 않나. 실업급여를 받으면 죄인처럼 있어야 한다고 보는 (당정의) 시선은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늘리고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 평균 대비 실업급여 지급기간이 짧은 편"이라며 "플램폼 노동자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많다. 지급기간을 늘리고 대상을 확대하는 게 OECD 권고의 핵심이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도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대한민국 노동자들에게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는 길은 '산 넘어 산'이다. 비자발적 퇴사였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어렵고 5인 미만 사업장 또는 하청노동자에게 실업급여 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며 "정부가 신경을 쓰고 돌보아야 할 것은 실업급여 갑질의 단속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지적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