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 법령 명시된 제도에 영향
당정 "최저임금보다 많은 실업급여 개편"
노동계 "열악한 처지 노동자에 고통 전가"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의실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세종=이동률 기자 |
[더팩트ㅣ세종=박은평 기자]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막바지 논의에 들어갔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의 최대 관심사는 사상 처음으로 '1만 원'을 넘길 수 있을지 여부다. 이는 최저임금이 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 등의 지표로 활용돼 관심을 모은다.
13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13차 전원회의에서 노사는 내년도 최저임금 6차 수정 요구안으로 각각 1만620원, 9785원을 제시했다. 여섯 차례 걸친 수정안으로 격차는 최초 2590원에서 835원으로 좁혀졌다.
노사 자율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공익위원들의 의지가 강해 다음주 18일 제 14차 전원회의에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1만 원 안팎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내년도 최저 임금의 활용 방안과 쟁점을 살펴본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있다./세종=이동률 기자 |
◆ 28개 법령 최저임금 산정지표 활용
최저임금은 사업주가 그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해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노동자 생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2022년 최저임금 심의편람 '최저임금을 활용하고 있는 주요 법령과 그 적용기준'에 따르면 고용보험법 등 28개 법령에서 최저임금을 산정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각종 일자리 사업 등까지 200여 개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
최저임금과 연동되는 주요 지원제도는 구직급여, 출산휴가급여, 선거지원수당, 직업훈련수당, 새터민 정착금, 사회보장급여 등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휴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삼는다. 고용보험법 출산전후휴가도 최저임금이다. 육아휴직급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서비스단가를 책정하는 요양보호사와 어린이집 교사 임금 등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기준이 된다.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르면을 공정선거지원단원에게 예산의 범위에서 수당을 지급할 때 최저임금 이상으로 지급하게 돼 있다. 사이버공정선거지원단도 마찬가지다.
탈북자의 정착지원금 상한액도 최저임금 200배 상당액의 범위에서 기본금·가산금·장려금 등을 구분해 지급한다.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이들에 대한 형사보상금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측 관계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9차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더팩트DB |
◆ 최저임금 보다 많은 실업급여 '논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정책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구직급여(실업급여)다. 실업급여는 실직한 근로자 중 재취업 활동을 하는 이들의 생계 안정을 위해 국가가 정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보험법 제46조 '구직급여일액'에 따라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80%로 연동된다.
고용보험 가입자가 실직 후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는 평균임금의 60%로 산정하고 있지만 그 금액이 최저임금 80%로 계산되는 실업급여 하한액을 넘지 못하면 최저임금 기준으로 산정해 지급되는 것이다.
올해 실업급여 하한액은 8시간 기준 하루 6만 1568원, 한달 185만 원이다. 최저임금(월 201만580원)을 받는 근로자가 4대 보험료와 세금 등을 빼면 실수령액이 실업급여와 비슷해진다. 일부 실업급여 수급자는 일할 때 받던 월급 실수령액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기도 한다.
이에 정부 여당은 최근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까지 언급하며 대대적인 고용보험 개편을 검토하기로 했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는 서울 여의도 국회본청에서 실업급여 제도개선을 위한 민당정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공청회 직후 브리핑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기형적 현행 실업급여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원칙에 뜻을 같이 했다"며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 보너스라는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약 163만 명으로, 이 가운데 28%가량인 약 45만 명은 실업급여가 세후 소득보다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도 "일하며 얻는 소득보다 실업 급여액이 더 높다는 건 성실히 일하는 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시장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실업급여 축소 추진을 비판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실업급여를 반복해서 받는 것은 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질 낮은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라며 "그런 실업 노동자들의 실업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업급여 삭감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계약 종료와 해고, 권고사직이 만연한 노동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이재명 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자 스스로 내는 부담금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데 마치 적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부·여당 태도에 참으로 한심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한액을 조정하려면 고용보험법 개정이 필요한데 여소야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한 야당의 문턱을 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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