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짜장면 두그릇'에 데이트폭력 직감…112상황실 터줏대감
입력: 2023.07.02 06:00 / 수정: 2023.07.02 06:00

경기남부청 112상황실 강승구 경위
20초 남짓 신고 전화서 위기 상황 파악
"신고자 상황에 공감하고 경청해야죠"


데이트 폭력을 막아낸 강승구 경기남부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소속 경위가 경기남부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 신고접수 전화를 받고 있다./수원=임영무 기자
데이트 폭력을 막아낸 강승구 경기남부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 소속 경위가 경기남부경찰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서 신고접수 전화를 받고 있다./수원=임영무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짜장면 두 그릇만 갖다주세요."

2017년 4월. 화창한 봄날 경기남부경찰청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기 너머 젊은 여성은 떨리는 목소리로 주소를 읊으며 짜장면을 갖다달라고 했다. 수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보통 젊은 여성은 낮에 장난전화를 하지 않는다.

"혹시 남자친구한테 맞았어요?"라고 묻자 떨리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한다.

"짜장면집이라고 말하면서 저한테 말씀하세요."

짜장면이란 단어에도 데이트폭력을 떠올리는 112치안종합상황실 신고 접수요원 강승구 경위의 이야기다. 강 경위의 직감으로 여성은 데이트폭력의 위기에서 탈출했다.

112신고 접수요원은 위험에 빠진 시민이 가장 처음 만나는 경찰이다. 신고 내용과 위치를 파악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도록 전달한다. 사건 긴급성에 따라 출동 여부를 판단하고 전산시스템에 입력한다. 관할경찰서 상황실은 전산시스템에 입력된 자료를 토대로 가장 가까운 파출소·지구대 경찰을 현장에 출동시킨다.

접수요원이 초기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경찰의 얼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112신고 접수요원은 위험에 빠진 시민이 가장 처음 만나는 경찰이다. 신고 내용과 위치를 파악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도록 전달한다. /임영무 기자
112신고 접수요원은 위험에 빠진 시민이 가장 처음 만나는 경찰이다. 신고 내용과 위치를 파악해 경찰이 출동할 수 있도록 전달한다. /임영무 기자

2003년 입직한 강 경위는 지난 2013년부터 경기남부청 112치안종합상황실에 근무하고 있다. 2018~2020년 기동대 생활을 제외하면 햇수로 8년간 접수요원으로 활약 중인 상황실의 터줏대감이다.

'짜장면 전화'는 운이 아니었다. 20~30초 남짓한 통화로도 상황을 정확히 짚어내는 실력이다. 한 번은 오후 8시쯤 신고전화가 왔다. 차 안에서 전화를 건 것처럼 들렸다. 신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말다툼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위치를 확인해 보니 고속도로. 가정폭력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강 경위는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자제분이랑 통화하는 것처럼 말씀하세요. 다음 휴게소까지 몇 키로 남았나요, 휴게소 가시면 화장실로 들어가세요. 최단 시간 안에 출동시킬게요."

신고자는 그제야 대답했다. "엄마는 지금 ○○이야. 다음 휴게소까지는 30분 정도 남았네." 강 경위의 대처 덕에 위험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경기 하남시에서 발생한 가정폭력 사건도 있었다. 외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60대 남성이 아내에게 수차례 흉기로 상해를 가했다. 여성은 피범벅 상태로 간신히 옆집에 피신했다.

이웃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신고자는 패닉상태였다. 집에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강 경위는 침착하게 말했다.

"아이들 놀라면 안 되니까 방에 들어가라고 하세요. 그리고 피해자 지혈하셔야 해요. 의식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마른 수건 가져와서 상처 부위에 꽉 눌러 주시고요. 구급차 빨리 보내드릴게요."

강 경위의 말에 이성을 찾은 신고자는 침착하게 지시에 따랐고 피해자는 목숨을 건졌다.

짜장면 전화는 운이 아니라 실력이 아닐까. 20~30초 남짓한 통화로도 상황을 정확히 짚어낸다. /수원=임영무 기자
'짜장면 전화'는 운이 아니라 실력이 아닐까. 20~30초 남짓한 통화로도 상황을 정확히 짚어낸다. /수원=임영무 기자

가장 보람찰 때는 피해자를 살리고 피해를 예방한 순간이다.

"범인 검거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나 어려우신 분들 도와드리고 고맙다는 얘기 들었을 때가 가장 좋아요. 자부심도 느껴지고요. 언제, 어디서든 경찰관 출동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즉시 112로 신고해 주시면 저희가 신속하고 정확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거예요."

초동대처의 '달인' 강 경위는 신고자의 상황에 공감하고,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고자들은 육하원칙에 맞게 얘기하지 않아요. 긴장된 상태니까요. 주소부터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다짜고짜 피해 사실부터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접수경찰관이 상황에 맞게 신고자의 상황에 공감하고 신고자를 안심시켜야 해요."

목표는 많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시민이) '보이는 112'를 많이 이용하셨으면 좋겠어요. 획기적인 시스템이거든요. 말로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이실 때 휴대전화를 톡톡 치세요. 그러면 경찰이 신고자 휴대전화로 문자를 전송할 거예요. 문자에 포함된 URL을 누르면 신고를 접수할 수 있어요. 위치도 찍히고요. 현장상황이 실시간으로 접수요원에 전송되기도 해요. 꼭 사용하셔서 피해를 예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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