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사교육비 경감 대책 '킬러문항 배제'
학부모들 "효과 의문…정부가 불안감 조성"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사교육 경감 대책 브리핑에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더팩트ㅣ황지향 인턴기자] 정부가 치솟는 사교육비에 칼을 빼 들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을 배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 한다는 계획이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사교육비 경감의 근본 대책은 아니라는 우려가 나온다. 수능이 5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학생들과 학부모의 혼란만 가중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입시학원 대신 공교육만으로도 수능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고 수능 출제 관리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현장교사 중심의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설치하고 수능 출제진도 현장교사 중심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학생·학부모 "킬러문항 배제, 효과는 글쎄"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 은평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조연우 양은 "킬러문항 배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면서도 "변별력을 위해 나머지 문제들의 난이도를 전체적으로 올릴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킬러문항보다 난이도가 낮은 '준킬러문항'이 늘어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50대 학부모 장모 씨도 "아이가 내년이면 고3인데 걱정이다. 그거(킬러문항) 없앤다고 사교육을 과연 안 시킬 수 있을까"라며 "당장 변화를 확인할 수 없으니 내년까지는 지금 시키고 있는 수학과 영어 사교육을 계속 시킬 것 같다. 지금은 솔직히 모르겠다"고 밝혔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박헌우 기자 |
강혜승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정부의 대책이 사교육비 경감에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능을 5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학생들에게 부담만 가중한다고도 지적했다.
강 지부장은 "(주변 학부모들도) 굉장히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대책이 효과가 있을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3월 신학기에 발표했다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수능이 5개월 남은 상황에서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불안감을 조성했다"며 "9월 모의평가 때 사례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11월 수능까지 대비할 수 있을까. 왜 N수생이 자꾸 생겨나겠는가. 어떻게든 사교육 시장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상대평가를 하고 변별력을 나타내야 하니까 킬러문항까지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대학입시 제도와 수능이 한계에 도달했다. 입시제도를 어떻게 전환할지 논의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사교육계도 혼란…"근본 대책부터" 지적도
사교육계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킬러문제와 관련된 고액 사교육 등은 당분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킬러문항을 배제해도 변별력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교육부에서 시그널을 주고 있어서 수능 자체 부담은 학생 수준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며 "9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까지 학습 방법, 전략 등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9월 평가원 이후에도 11월 수능 때까지 또 다른 예측 불확실성 등이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6월 평가원 시험이 그렇게 어려운 시험이 아니었다. 왜 이제와서 갑작스럽게 대책을 발표되는지 싶다. 앞으로 점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예측하기 어렵고, 6월보다 수준을 낮춰 공부해야 하는지 공급자(학원) 입장에서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종로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
정부 발표가 사교육비 문제 해결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사교육이 교육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승자독식의 사회, 빈부격차 심화, 직업시장의 양극화 등이 깔려 있고, 복지제도도 불완전하다 보니 부모 입장에서도 더 나은 교육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대비한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며 "교육정책의 목표를 사교육비 경감으로 삼으면 효과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개인의 경쟁력과 미래에 필요한 역량에 맞춰 대입제도를 개선해나가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공교육을 아무리 잘 해도 지금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사교육) 수요를 없앨 수 없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살 수 있다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지원책이 마련된다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억지로 의대에 가는 불행한 아이들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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