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무료급식 '밥퍼' 철거 위기…동대문구와 평행선
입력: 2023.06.29 00:00 / 수정: 2023.06.29 07:10

동대문구 "밥퍼, 안전문제로 부적절"
최일도 목사 "건물 소유주는 서울시"


36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 동대문구의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밥퍼 건물 뒤로 보이는 청량리뉴타운의 모습. /이장원 인턴기자
36년의 역사를 지닌 서울 동대문구의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밥퍼 건물 뒤로 보이는 청량리뉴타운의 모습. /이장원 인턴기자

[더팩트ㅣ이장원 인턴기자] 36년 역사를 지닌 서울 동대문구의 무료급식소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가 다시 존폐 기로에 섰다. 지난해 12월 동대문구가 철거명령과 함께 2억83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밥퍼를 운영하는 다일공동체는 지난 1일부터 '밥퍼 건물철거반대 및 양성화 지지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3월 구청을 상대로 시정명령 처분취소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법적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다일공동체 이사장 최일도 목사는 밥퍼의 위기에 복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 목사는 "구청장이 하라고 할 때는 서울시가 고발하고, 서울시와 이제 합의하니까 또 구청장이 고발한다"며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서울시 고발 취하로 실마리 푸는 듯 했지만

밥퍼 철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12월 서울시는 다일공동체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과 건축법 위반 혐의로 동대문경찰서에 고발했다. 당시 다일공동체가 기존 밥퍼 건물을 증축하면서 서울시의 토지 사용 허가와 동대문구의 건축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다일공동체는 "서울시와 동대문구 사이 행정 미스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긴다"고 반박했다.

앞서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는 2009년 하수도 공사를 위해 밥퍼 건물을 철거하고 바로 뒤편에 새 건물을 지어줬다. 기존 건물은 구의 건축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서울시는 구에 새건물에 대한 건축 허가를 요청했지만 '용도가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후 서울시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밥퍼는 14년간 사실상 무허가 상태로 운영됐다.

지난해 1월 오세훈 서울시장과 최일도 목사가 만나 매듭이 풀리는 듯 했다. 서울시는 고발을 취하하고 증축된 건물을 기부채납 받는 조건으로 토지 사용 허가를 내줬다.

20일 서울 동대문구 다일복지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난 최일도 목사는 구청장이 하라고 할 땐 서울시가 고발하고, 서울시와 합의하니까 또 구청장이 고발한다고 토로했다. /이장원 인턴기자
20일 서울 동대문구 다일복지재단 사무실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만난 최일도 목사는 "구청장이 하라고 할 땐 서울시가 고발하고, 서울시와 합의하니까 또 구청장이 고발한다"고 토로했다. /이장원 인턴기자

◆동대문구청장 바뀌면서 불법 논란 재연

오 시장의 개입으로 일단락되는듯 했지만, 지난해 7월 이필형 동대문구청장이 취임하면서 밥퍼는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건물 증축을 독려하는 등 밥퍼에 호의적이었던 유덕열 전 구청장과 달리 이 구청장은 당선 공약부터 '밥퍼 정비'를 내세웠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밥퍼에 건물 사용중지 명령과 철거 명령을 내린 동대문구는 12월 이행강제금으로 약 2억8328만원을 부과했다.

구는 다일공동체가 허가받은 내용과 다르게 불법증축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 고발 사건 이후 유 전 구청장은 임기 마지막날인 지난해 6월30일 '기존 건물 철거'를 조건으로 밥퍼 건물에 건축 허가증을 발행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불법 건축물인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지으라고 건축 허가를 내준 것이다. 관내에서만 1000여 건의 불법건축물이 적발되는 상황에서 밥퍼만 예외로 둘 수 없다"며 "기존 건물이 무허가 건물이었다 보니 안전 부분이 취약하다. 올 2~3월쯤 안전 점검을 나갔는데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나왔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건물에서 배식 행위를 하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에 최 목사는 "안전 점검 이후 저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은 다 했다"며 "남은 것들은 경량철골 등 구조적 문제인데, 이는 건물 소유자이며 건축자인 서울시에 따질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서울시는 동대문구와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밥퍼가 허가 받은대로 신축을 빨리 해야한다"고 밝혔다.

20일 정오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를 찾은 시민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이장원 인턴기자
20일 정오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밥퍼)를 찾은 시민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이장원 인턴기자

◆ "복지시설 존치해야" vs "아이들 안전 걱정"

다일공동체가 행정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청량리역 부근이 전면 재개발되는 까닭에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청량리뉴타운에는 오는 7월까지 약 3000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들에게 무료급식소인 밥퍼는 '님비(NIMBY)' 시설로 인식된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어린 자녀를 두신 분들이 특히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인근의 초등학교로 가기 위해선 밥퍼 앞을 지나야 하는데, 학부모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지나가는 아이를 불러서 얼차려를 시키는 사건 등이 종종 발생한다"며 "밥퍼와 관련해서만 1년에 1000여 건 정도의 민원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 목사는 지난해 8월 건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고발인은 다름 아닌 청량리뉴타운 입주자 300명이었다.

이와 관련해 최 목사는 "뉴욕, 런던, 파리 등 가장 문명이 발달한 곳에 거지들이 가장 많이 산다. 거기서는 이런 시설을 철거하기는 커녕 고마워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안과 관련해서도 "진짜 죄인들은 감옥에 있다. 이 사람들은 그저 돈이 없을 뿐"이라며 "위험해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일공동체가 진행하는 철거반대 및 양성화지지 범국민 서명운동에는 27일 오후 6시30분 기준 2만918명이 동참했으며 그중 동대문구 구민은 3529명이다. 최 목사는 "뉴타운 주민들 중에서도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밥퍼를 정치적 관점이 아닌 사랑의 눈으로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bastianle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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