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뛰어들어도 괜찮아"…'장애' 없이 즐기는 공연
입력: 2023.06.17 00:01 / 수정: 2023.06.17 00:01

서울시 특수학교 학생 대상 '공연봄날'
"장애학생들 돌발상황 이해해줘 만족"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 모습. /서울시 제공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애화학교 친구 올라오세요~ 우리 친구가 건강하게 지내라고 기원을 담아서 박을 깨볼 거예요."

15일 오전 10시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성북미디어문화마루 꿈빛극장. 전통예술 공연 '사자특공대 백수지왕'의 연극 배우가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특수학교 학생 한 명을 무대 위로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특수학교 학생과 교사 197명은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을 관람하러 왔다. 공연봄날은 '학생들은 공연 보는 날, 공연계는 봄날'이라는 슬로건으로 서울 시내 초·중등학교와 특수학교 학생들에게 무료 공연 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날 공연은 전 세계에 역병이 돌고 있는 2023년, 각 지역을 수호하는 사자들이 출동해 힘을 모아 마을을 지킨다는 내용의 연극이다.

청각장애 학생들과 정서·지체장애 학생들이 교사의 통솔 하에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각 학교 교사들의 안내로 학생들은 질서 있게 입장했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상모를 쓴 배우가 무대 위로 올라 "공연에 타령장단이라고 우리나라 전통 장단이 나오는데 같이 따라해볼까요? 하나둘 셋 넷 얼쑤~"라며 흥을 돋웠다.

이어 배우는 "방금 제가 뭐라고 했죠? '얼쑤'라고 했죠? 이 얼쑤는 추임새라고 하는데 앞에서 공연하는 사람들을 관객 여러분들이 추켜세워준다고 해서 추임새라고 해요"라고 설명했다.

흥겨운 사물놀이와 함께 극이 진행될수록 객석의 분위기도 달아올랐다. 객석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춤을 추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음악에 맞춰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즐거워하는 학생도 있었다.

극이 시작된 지 40분쯤 지났을 때 학생 한 명이 갑자기 무대에 뛰어들기도 했다. 배우들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학생을 자연스럽게 달래서 무대 아래로 내려보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북청사자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북청사자는 사악한 것을 물리칠 힘이 있다고 믿어 잡귀를 쫓는다고 여겨지는 사자다.

배우는 "북청이가 몰고 온 박에는 근심걱정이 담겨 있어 발로 깨면 좋은 일만 생긴다"며 "여러분을 위해 한 사람씩 불러서 이 박을 깨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 모습. /서울시 제공

한 학생이 무대에 올라 건강을 기원하며 발로 박을 밟았다. 배우가 "여러분, 다 같이 하나둘셋 외치면서 다시 해볼까요?"라고 호응을 유도하자 학생들도 큰 목소리로 숫자를 같이 외쳤다. 세 번만에 박이 깨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청각장애 학생들을 위해 무대 한켠에서 수어통역사 3명이 공연 내용을 모두 통역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즐거운 표정으로 수어 통역에 임한 최황순(50) 수어통역사는 "학생들 이 이해할 수 있는 어휘를 선택해 통역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일반 공연과 달리 학생들이 지정석에 앉은 데다가 조명도 밝아서 표정을 보며 함께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통역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북청사자와 특수학교 교사가 함께 모두의 근심걱정이 담긴 박을 깨면서 공연은 마무리됐다. 이날 공연을 지켜보던 양윤정(44) 애화학교 초등부 교사는 "일반 학생들과 공연을 볼 때는 우리 학생이 무대에 뛰어들거나 소리지르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나가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는데 공연봄날은 학생들의 특성을 이해해줘서 더 편하게 볼 수 있었다"며 "비용도 부담되는 면이 있었는데 부담을 덜 수 있어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각 학교별로 공연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공연장을 나갔다.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을 보기 위해 특수학교 학생들이 입장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의 학생 공연관람지원사업 '공연봄날'의 하나인 사자특공대 백수지왕 공연을 보기 위해 특수학교 학생들이 입장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다만 아직까지 공연장에 휠체어석이 많이 구비되지 않은 점은 보완해야 할 점으로 보인다. 이날 꿈빛극장도 전체 326개 자리 가운데 장애인석은 4개에 불과했다. 배리어프리 공연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가 시범사업이라 부족한 점들은 내년에 보완할 예정이다. 배리어프리 공연도 내년에 수요가 있다면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공연봄날은 초·중등·특수학교 학생 6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총 200회 무료 공연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사업 규모를 기존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확대했다. 시내 초·중등학교 432개교와 특수학교 6개교가 대상이다. 작품 수도 지난해 31편에서 올해 45편으로 늘렸다. 안전하고 즐거운 관람을 위해 버스를 제공하고 안전관리 인력도 투입한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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