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경고 외면한 학교…쓰레기차에 친구 잃은 동덕여대생들
입력: 2023.06.10 00:00 / 수정: 2023.06.10 07:26

사고 발생 전부터 위험성 지적했지만 방치
데크 '무용지물'… "인도-차도 구분 못 해"


8일 찾은 동덕여자대학교 캠퍼스는 지난 5일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양모 씨를 추모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사고 현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양씨를 추모하는 메세지를 남겼다. /이장원 인턴기자
8일 찾은 동덕여자대학교 캠퍼스는 지난 5일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양모 씨를 추모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사고 현장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양씨를 추모하는 메세지를 남겼다. /이장원 인턴기자

[더팩트ㅣ이장원 인턴기자]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쓰레기 수거차에 치여 학생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학생들은 학교의 안일함이 빚어낸 '인재'라고 지적한다.

10일 경찰과 동덕여대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오전 8시50분께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 인문관과 숭인관 사이 언덕길에서 쓰레기 수거작업을 하던 1t 트럭이 미끄러져 등교 중이던 재학생 양모(21) 씨를 쳤다.

양씨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인 7일 저녁 7시20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학생들은 이 가파른 언덕길이 위험하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는데도 학교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언덕 윗쪽 쓰레기 집하장을 오가는 수거 트럭들을 비롯해 차량이 자주 통행하는데도 언덕길을 이용하는 학생들을 위한 안전시설은 없었다.

<더팩트>가 찾은 동덕여대 캠퍼스 본관 앞과 사고가 발생한 삼거리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양씨를 추모하는 근조 화환들과 포스트잇이 가득했다. 언덕길 서편의 인문관 담장과 아래쪽의 성북구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북쪽 담장은 일부 파손돼 사고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했다.

언덕길 진입부에는 차단봉과 함께 '차량 통행금지'라는 팻말이 있었지만, 사고 발생 이후 설치됐다고 한다.

양씨의 1년 선배라는 엄모(22) 씨는 "학생들 사이에서 여기 (언덕길을) 올라가기가 위험하다는 식의 이야기는 항상 있었다"며 "데크 계단이 작년 초에 설치되긴 했는데, 인도와 차도를 명확히 구분하는 역할은 못했다"고 토로했다.

엄씨의 말처럼 인문관 담장을 따라 설치된 데크 계단과 언덕길 사이에는 손잡이도 없었다.

사고가 발생한 언덕길 서편에 위치한 데크 계단에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아무런 차단 장치가 없었다. /이장원 인턴기자
사고가 발생한 언덕길 서편에 위치한 데크 계단에는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아무런 차단 장치가 없었다. /이장원 인턴기자

학생들은 학교가 건의를 외면해왔다고 주장했다. 아동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2) 씨는 "2019년부터 총학생회 차원에서 이 문제를 계속 건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럴 때마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노력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서원 총학생회장도 "학생회 차원에서 쓰레기 집하장 이전 등 지속적인 안전 점검과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며 "학교 측에선 '노력해 보겠다'는 말만 하고 실제로 진행을 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은 빠른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학생들의 안전에 주의하고 있었다는 입장이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2018년 '알몸남 사건' 이후 학생들의 안전을 지속적으로 체크했다"며 "언덕길의 경우에도 주차공간을 없애는 등 차들이 다니지 않게끔 조치했다"고 밝혔다. 쓰레기 집하장 위치를 놓고는 "학교 캠퍼스가 사실 넓은 편이 아니다 보니 집하장을 옮기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며 "(쓰레기 하역 작업을) 아침 일찍 하는 등 학생들의 안전을 최대한 신경쓰려 했다"고 설명했다.

학교와 학생 간 소통 체감도 차이도 컸다. 학교 측은 "학교 홈페이지에 민원 Q&A라는 공식적인 요청 창구가 있다. 학생들이 거기에 글을 남기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다 답변을 달아둔다"고 밝혔지만, 학생들은 존재조차 몰랐다는 입장이다.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 중 학교 민원 게시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서원 총학생회장도 "면담요청서를 보내 총장과 면담 일정을 잡거나 교직원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식으로 학교와 소통했다"고 설명했다.

동덕여대는 사고 발생 직후 차단봉을 세우는 등 사고 현장 인근의 차량통행을 통제했다. 이를 두고 학생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장원 인턴기자
동덕여대는 사고 발생 직후 차단봉을 세우는 등 사고 현장 인근의 차량통행을 통제했다. 이를 두고 학생들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장원 인턴기자

학생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사고 현장 인근 뿐 아니라 교내 전체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쓰레기 집하장 위치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만 학생들은 '만시지탄'이라고 비판한다.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진작 적극 수용했다면 피해자는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운전자인 80대 A씨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양씨가 사망하면서 A씨에게 치상이 아닌 치사 혐의를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bastianle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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