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재승인 점수 넘자 보인 반응
"'미치겠네' 발언은 범죄 무관한 내용"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의 재승인 심사 조작 의혹과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3월 29일 오후 서울 도봉구 북부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TV조선 점수 보고를 받은 뒤 "미치겠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범행이 시작됐다고 봤지만 직접 지시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한 위원장 측이 향후 재판에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를 문제삼을 만하다고 내다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박경섭 부장검사)는 지난 2일 한 위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한 위원장 주도로 TV조선 재승인을 막기 위해 평가 점수 조작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심사위원 선정에 개입하고, 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승인까지 했다고 판단했다. 관련 의혹이 언론보도를 통해 제기되자 '평가점수 누설이나 사후 조작은 없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배포했다는 혐의도 있다.
법률가들이 대체로 짚는 사건의 핵심은 TV조선 재승인 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 것이다. 방송정책국장 양모 씨와 방송지원정책과장 차모 씨가 일부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TV조선에 대한 재승인 유효기간을 3년으로 한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이의를 제기할 것을 대비해 마치 법적 검토를 거친 것처럼 꾸몄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위원장이 부하 양씨와 차씨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내려서 의무없는 일을 시켰다는 논리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해당 부분의 내용보다 한 위원장의 발언 등 배경사실 설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을 살펴보면 한 위원장은 2020년 3월 TV조선이 재승인 기준이 '650점'을 넘었다는 사실을 방통위 방송정책국장 양모씨에게서 보고받자 "미치겠네. 그래서요?", "시끄러워지겠네", "욕을 좀 먹겠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위원장의 반응 때문에 점수 조작 범행이 시작됐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평상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한 위원장이 당혹감을 드러내자 직원들이 집계 결과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한 위원장이 점수를 고치라고 직접 지시한 정황은 특정하지 못했다. 한 위원장이 직권을 남용해 하급자들에게 '묵시적 지시'를 내렸다고만 보고 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박경섭 부장검사)는 지난 2일 한 위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남용희 기자 |
법조계에선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이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본다. 검찰이 혐의 외에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한 예단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공소장에 담았다는 것이다. "미치겠네"라는 발언은 범죄 혐의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낮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검찰이 집중하는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같은 경향이 뚜렷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인 김남근 변호사는 "공소장에는 배경 같은 것을 쓰면 안 된다. 직권남용이면 구성 요건 사유만 쓰면 되고, 그 내용만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며 "검찰이 언론에 공소장이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두고 보도자료처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위원장에 예단을 갖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 공소장 일본주의에 어긋난다. 무엇이 범죄사실인지는 잘 안읽히고, 배경만 기술해서 어떤 심증을 형성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공소장에는 객관적으로 공소를 제기하는 내용만을 담아야 하고, 그래서 기본적으로 짧아야 한다. '미치겠네'라는 발언은 구성 요건과 관계없는 내용이 들어간 것처럼 보여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법조계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검찰이 정무적으로 공소장을 쓰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했다.
sejungkim@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