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지 않는 휴대폰…탑골공원·쪽방촌 '쓸쓸한 카네이션'
입력: 2023.05.09 00:00 / 수정: 2023.05.09 07:40

"자식들 연락 없어"…떡 나눔 행사만 긴 줄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떡나눔 한마당 행사에서 나눠주는 떡을 받기 위해 줄을 지어 서있었다. /황지향 인턴기자
어버이날인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떡나눔 한마당' 행사에서 나눠주는 떡을 받기 위해 줄을 지어 서있었다. /황지향 인턴기자

[더팩트ㅣ김세정 기자·황지향 인턴기자] 탑골공원의 어버이날은 고요하다. 낳고 길러주신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날이지만, 80대 신모 씨는 자식에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지나가던 스님이 꽂아준 카네이션으로 서운함을 달랜다. 신씨는 이날도 그늘 밑 벤치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노인들은 조용히 줄을 지어 서있다. '어버이날 떡나눔 한마당' 행사에서 나눠주는 떡을 받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어버이날은 특별하지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식들의 기별을 기다려보지만, 휴대전화는 끝내 울리지 않는다.

경기 양주에서 탑골공원을 찾은 정모 씨에게 "자식 분들이 연락은 하셨냐"고 물었다. 그는 "자유롭게 혼자 다니는 날"라며 손사래를 쳤다.

인근 쪽방촌도 비슷하다. 어버이날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이 조용하고, 한산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좁은 방이 늘어선 골목에는 TV소리부터 화장실 소리, 도마 소리만 얕게 들려왔다.

80대 남성 김모 씨는 "애들이 전부 자기 살림 산다고, 일 나가야 한다고 (어버이날에 안 오겠다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불편한 다리로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폐지를 줍는다. 폐지 가격이 떨어지면서 손에 쥐는 수입은 하루 900원 남짓이다. 김씨는 "작년에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그래도 해야 한다"며 힘겹게 수레를 끌었다.

60대 남성 김모씨는 아내와 헤어지면서 자식들과도 단절됐다. 자식들에게 '쪽방촌 생활'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는 "애가 둘이다. 제가 예전에 자영업을 하다가 무너지면서 가정도 힘들어졌다. 제가 이렇게 살아서 연락을 끊는다. 이런걸 (쪽방촌 생활) 감추는 쪽이다. 자식들에게 내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지금 현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한국복지패널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부모와 떨어져 사는 가구는 부모와 1년에 평균 40회 정도 왕래하고, 112회 정도 전화 연락을 한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3.3회꼴로 만나고, 일주일에 2.2회꼴로 통화하는 셈이다. 저소득 가구에서는 접촉이 더 뜸한 편이다. 이들의 왕래는 1년 평균 39회, 전화 연락은 90회다. 80대 김씨와 60대 김씨처럼 쪽방촌의 상황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80대 남성 김모 씨는 애들이 전부 자기 살림 산다고, 일 나가야 한다고 (어버이날에 안 오겠다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불편한 다리로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폐지를 줍는다. /황지향 인턴기자
80대 남성 김모 씨는 "애들이 전부 자기 살림 산다고, 일 나가야 한다고 (어버이날에 안 오겠다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불편한 다리로 새벽 6시부터 밤 11시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폐지를 줍는다. /황지향 인턴기자

자식과 소식이 끊긴 지 수십 년째라는 60대 남성 강모 씨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덤덤히 이야기했다. 자식 생각을 애써 떨치려고 하지만, "먼저 찾아준다면 볼 의향은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80대 여성 김모씨는 "그냥 시장에 간다"며 어버이날에 특별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식과 연락은 가끔 하지만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따로 하고 그런 건 없다. 나는 혼자 사니까"고 말했다. 또 다른 80대 여성 A씨도 "집도 별로인데 애들이 왜 오겠냐. 내가 다 오지 말라고 했다. 속상하니까 더 묻지 말라"며 말을 아꼈다.

한적한 오후, 맞은편 광장에서는 '어버이날 기념 효 공연' 소리가 들려왔다. 떠들썩한 노래가 울려퍼졌지만, 노인들은 미소 없이 손뼉만 치고 있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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