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납치·살해' 사인은 마취제…병원 관리 '빨간불'
입력: 2023.04.14 00:00 / 수정: 2023.04.14 00:00

'성형외과 근무' 이경우 아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송치
병원 입출고 시스템 100% 보장 못해…중소병원은 더 취약


경찰은 이경우의 아내 A씨가 이경우에게 마취제와 주사기를 제공했다고 보고 A씨를 마약류 관리법 위반과 강도살인방조, 절도 혐의로 송치했다. 사진은 이경우. /남윤호 기자
경찰은 이경우의 아내 A씨가 이경우에게 마취제와 주사기를 제공했다고 보고 A씨를 마약류 관리법 위반과 강도살인방조, 절도 혐의로 송치했다. 사진은 이경우.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마음만 먹으면 가져갈 수 있죠."

지난 13일 '강남 납치·살해 사건' 피해자의 사인이 마취제 중독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사건 주범 이경우의 배우자 A씨가 이경우에게 마취제와 주사기를 제공했다고 보고 A씨를 마약류 관리법 위반과 강도살인방조, 절도 혐의로 송치했다. A씨는 서울 강남구 한 성형외과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종사자들이 마취제를 범행 도구로 오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취제 관리 '구멍'…범행 도구 이용도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마취제 관리 문제를 우려한다. 경기도 한 정형외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정모 씨는 "마음만 먹으면 마취제를 빼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는 '마약류 및 임시마약류 보관 지침'이 마련돼 있다. 지침에는 '마약은 다른 약품과 구분해 일반인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장소에 이중 잠금장치가 돼 있는 이동 불가한 철제금고에 보관하라'고 규정됐다. 하지만 정 씨는 "잠금장치에 보관하는 게 원칙이나 일반 캐비넷에 보관할 때도 있다"며 "교대할 때마다 (약품을) 카운트 하지만, 비밀번호를 알기에 가져갈 수 있다"고 했다.

대형 병원은 전산 시스템을 통해 상대적으로 마취제를 철저히 관리한다. 하지만 일부 중·소 병원에서는 약품관리 체계가 허술해 마취제를 무단 유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범행 도구로 오용하는 의료인도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지난 2022년 서울 강남 한 의원에서 의사가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를 환자에게 불법 투여하고 성폭행해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의사는 피해자에게 잠을 잘 수 있게 해준다며 에토미데이트를 수 차례 투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일선서 한 형사과장은 "큰 병원일수록 입출고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100%는 없다"며 "작은 병원은 관리 체계가 더 느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8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간호사가 약물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의료 종사자의 직업윤리에 기대서는 약물 유출을 막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건 당시 김순례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립중앙의료원이 제출한 '의약품 관리 부실 감사보고' 자료를 공개하며 국립중앙의료원의 마약류 관리부실을 지적했다.

경찰은 A씨가 강도살인에 쓰일 줄 알면서 자신이 일하는 성형외과 의원에서 마취제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경우에게 건넨 것으로 판단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경찰은 A씨가 강도살인에 쓰일 줄 알면서 자신이 일하는 성형외과 의원에서 마취제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경우에게 건넨 것으로 판단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이번 사건도 경찰은 A씨가 범행에 쓰일 줄 알면서 자신이 일하는 성형외과 의원에서 마취제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경우에게 건넨 것으로 판단했다. 조사 과정에선 '피해자를 강제로 차에 태워 이동하는 과정에서 주사기를 사용했다'는 황대한, 연지호의 진술을 확보했고 지난 4일 A씨가 근무하는 성형외과를 압수수색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가 마취제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12일 부검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A씨는 지난 13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전문가들 "허위 기재 많아…정부 차원 관리 필요"

김희준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변호사는 A씨가 환자에게 투여한 뒤 남은 약물을 모았거나 의약품 관리대장에 약품 사용기록을 허위로 기재하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다만 "현재 체계에서 마취제를 빼돌리는 게 쉽진 않다"며 "흔한 사례는 아니다. 대부분 적발된다"고 말했다.

의료계 종사자의 무단 유출이나 투약 사고까지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력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부장검사는 "식약처에서 일일이 유통 과정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피의자가) 빼돌리는 것을 막지 못할 수 있다"며 "의료급여와 비급여가 차이가 있다 보니 일부는 시술한다고 장부에 기재를 하고 불법 유통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장은 "향정신성 의약품 등에 관해 (병의원에서) 제대로 관리가 안 되고 있다"며 "약품 사용기록을 허위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의료인들의 자정 노력과 함께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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