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운집 행사' 개념 명확하게 규정한 서울시 조례
참사 당시 자치경찰 '뒷짐'…"상위법이 지원해줘야"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다중운집 행사'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한 서울시 조례안이 공포됐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6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서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모습./더팩트DB |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다중운집 행사'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한 서울시 조례안이 공포됐다. 자치경찰이 적극적으로 시민의 안전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상위법이 개정되지 않는 이상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서울시 자치경찰사무 및 자치경찰위원회의 조직·운영 등에 관한 일부개정 조례'를 공포해 시행한다고 27일 밝혔다. 해당 조례안은 다중운집 행사에 '주최·주관하는 자가 없이 특정 장소에 불특정 다수가 자발적으로 모이는 경우'가 포함됐다.
지난해 12월 주최·주관자가 없는 다중운집 행사에 서울시장이 안전관리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다. 여기에 별표 조항으로 '다중운집 행사는 자치사무'라 적혀 있는 자치경찰위의 범위에도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박수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원래 기본적인 자치경찰 사무로서 (다중운집 행사를) 관할했어야 한다"며 "이제 정확히 어떤 게 다중운집 행사인지 모른다거나 근거가 없다는 등 핑계는 사라진다. 조례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법 개정으로 지난해 7월 출범한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는 주민 치안활동, 여성·청소년 보호·범죄 예방, 교통법규 단속 등 지역 안전을 담당한다. 기존 국가경찰제의 일률적인 운영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역별 치안 수요를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울시 자치경찰위는 서울경찰청과 각 관할 경찰서 자치경찰 4000여명을 지휘·통솔한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전 자치경찰이 별도로 준비한 사전 안전대책은 없었다. 김학배 시 자치경찰위원장은 참사 발생 1시간15분 후에야 관련 보고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다중운집 행사는 국가경찰 소관이며,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 한정해 자치경찰이 지휘한다"고 발언했다가, 지난해 11월 7일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뭇매를 맞기도 했다.
참사 이후 자치경찰위는 업무 추진 방향을 틀었다. 올해 주요업무 보고를 보면 첫 번째가 '범죄 및 사고로부터 안전한 안심서울 조성'이다. 특히 다중운집행사 재난·사고 상황 등 대응 체계 확립, 자치경찰사무 관련 치안상황 공유를 위한 서울경찰청 소통·지휘 체계 강화가 담겼다.
지난해 주요업무였던 여성대상범죄 불안 요인 제거 및 피해자 지원 강화, 위기 청소년 선도·보호활동 및 학교폭력 예방 강화, 자치경찰 복리 후생 강화 등과는 확연히 다른 셈이다.
자치경찰위 관계자는 "대형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나 인식이 고도화된 상황에다 다중운집 행사 개념을 명확했으니 안전관리를 더 챙겨볼 듯하다"고 말했다./남용희 기자 |
자치경찰위 관계자는 "대형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나 인식이 고도화된 상황에다 다중운집 행사 개념을 명확했으니 안전관리를 더 챙겨볼 듯하다"며 "위원회 차원에서도 전문위원단을 통해 다중운집 행사 위험성 평가를 하는 등 지난해보다 구체적 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청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안전관리 업무 지원에 대한 지휘를 더 구체화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자치경찰위가 주체적으로 추진하고, 서울시와 서울경찰청 등 연계나 협업을 위해 자주 만나고 있다"고 했다.
다만 아직까지 현장 인력은 자치경찰이 아닌 국가경찰이 지휘한다. 재난 긴급구조 지원은 자치경찰 업무지만, 현장 인력 중 자치경찰위가 지휘할 수 있는 인원도 많지 않다. 112신고 접수 등 초동조치 지휘 인력과 지구대·파출소 직원 모두 국가경찰 소속이다.
주최·주관 없는 행사 관련 지자체장이 안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들은 국회에서 심사 중이다.
박 의원은 "일선경찰서를 112 산하로 옮겨놓은 것을 다시 자치경찰 사무로 옮기고, 인력을 넘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상위법이나 행정안전부 장관의 시행령 개정이 있어야 하는데, 행안부는 요지부동이다. 제도적으로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은 근거와 권한이 있음에도 제대로 된 운영권이 없다면서 자치경찰에 대한 책임이나 예산 지원에 소극적"이라며 "시장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자치경찰이 자리잡기도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해석이 애매했던 조례를 명확히 한다는 건 의미있는데, 실제 상위 법령들이 명확하게 지원돼야 한다"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이 이전되는 과도기에서 조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법체계 전환, 시도지사의 권한 명시 등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spe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