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 없는 아이들④] "개인에 학폭 책임 전가…국가가 초기부터 개입해야"
입력: 2023.03.12 00:00 / 수정: 2023.03.12 00:00

경찰 출신 이상인 중랑청소년카페 대표
중학생 절도범 사건 후 청소년카페 문열어
촉법소년 연령 낮추기, 국가의 책임회피


이상인 중랑청소년카페 대표가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상인 대표 제공
이상인 중랑청소년카페 대표가 청소년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상인 대표 제공

"폭력의 순간에는 인간의 존엄, 명예, 영광 같은 걸 잃게 된다. 피해자들이 '원점이 되는 상태'를 응원한다".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는 드라마 제목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실에서는 피해자들이 '원점'이 될 수 있을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드라마'와 현실은 얼마나 부합할까. <더팩트>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문동은'들의 상처를 4회에 걸쳐 들여다본다.<편집자주>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피해자 편이 돼줘야 합니다. 가해자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에요. 처벌은 낮은 단계거든요. 초기 사소한 일부터 선생님과 경찰이 개입해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해요. 심해질 아이들이나 피해자도 줄어들겠죠."

지난달 22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인(61) 중랑청소년카페 대표 겸 사회적협동조합 세이프스쿨 이사는 '학교폭력'을 놓고 이같이 강조했다. 사흘 뒤 '아들 학교폭력 논란'으로 정순신 변호사의 경찰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이 취소됐다.

최근 양태를 보면 과거 물리적 충돌이 많았던 것과 달리 주로 SNS를 통해 벌어진다. 사소한 시비로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보낸 것이 학교폭력심의위원회까지 이어진다. "학교폭력이 과거보다 현재가 덜하다, 심하다"라는 말을 경계하는 이유다.

"학교 한번 가보세요. 축구도 안 하고, 길거리에서는 농구도 하지 않아요. 맨날 핸드폰만 보고 있죠. 아이들 성향이 약간 비활동적으로 바뀌는 거예요. 사건으로 비유하자면, 과거에는 형사사건이 많았다면 이제는 명예훼손, 모욕 등 사건이 많아진 셈이죠."

이 대표는 사건 발생 초기 개입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건이 커지거나 재발하지 않도록,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교사와 경찰의 적절한 교육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국가'가 중요한 이유다.

이 대표는 1989년 순경으로 입직해 지난해 경감으로 퇴직했다. 2010년쯤부터 청소년업무에 발을 들였다. 1990년대 집회·시위가 많아 기동대에서 10년가량 근무했다. 서울 혜화·도봉·강북·중랑경찰서 등 수사과에서 일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관심을 둔 계기는 자녀 때문이었다. 2009년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이 대표는 아들에 '잔소리'를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른 애들은 오토바이 타고 가면 나는 걸어가느냐"였다고 한다.

지난 22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사무실에서 이상인 중랑청소년카페 대표가 <더팩트>와 인터뷰 하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 중랑구 상봉동 사무실에서 이상인 중랑청소년카페 대표가 <더팩트>와 인터뷰 하고 있다.

당시 수사 분야에 회의를 느끼던 이 대표는 아들의 이같은 말에 청소년 문제에 관심 두기 시작했다. 이후 생활안전과 여성청소년계(현 여성청소년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학교전담경찰관(SPO)으로 근무하며 학교폭력 최일선에 있었다.

또 하나의 변곡점은 2011년쯤이다. 당시 후배들을 이른바 '삥뜯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3일에 한 번씩 파출소를 드나들었다. 이유가 궁금했던 이 대표는 집에 찾아갔다. 그런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학생은 먹고살고자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관할구청에서 후원금 20만원을 급히 받아 지원해준 뒤에야 이런 청소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중랑청소년카페' 문을 열었다. 우여곡절은 많았다. 수익업체가 아닌 탓에 지역 주민들의 봉사와 후원금으로 운영됐다. 이 때문에 후원 과정이 위법하다는 의심을 받아 감찰 대상에도 오르는 기막힌 사연도 있었다.

퇴직 이후에도 활동하는 이유는 단순히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가 개인이나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소년원을 다녀온 아이를 살펴보면 반성보다는 원망이 더 많다고 한다. 경중을 따지지 않고 사법 절차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비행 청소년 뒤에 비행 부모가 있다'라는데, 이게 말이 되지 않아요. 이 말속에는 학교도 경찰도, 결국 국가는 빠진 거잖아요. 국가가 학교폭력이나 청소년 문제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에 돌리는 거예요. 부모들을 만나면 눈물밖에 흘리지 않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법무부의 '촉법소년' 상한 연령 하향 추진에 부정적이다. 연령이 하향되면 많은 청소년이 '딱딱한' 사법 절차로 인해 개선이나 발전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또 하나의 책임 회피로 본다.

"물론 요새 물어보면 다 낮추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생각해봐요. 요새 중1이 그렇게 나쁜가요? 옛날이랑 비교해서 더 나빠졌나요? 휴대폰만 하고 학원만 다녀요. 저도 얼마 전까지 경찰이었지만, 법은 굉장히 딱딱하고 재량권이 없어요. 진지하게 고민하면 좋겠어요."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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