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안보수사6대장 박준범 경정 인터뷰
'경제간첩' 산업스파이 검거로 국가 기술경쟁력 수호
박준범 서울경찰청 안보수사6대장이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세검정로 별관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동률 기자 |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세계 시장 속 우리 기업 기술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을 볼 때면 잠이 오지 않아요. 안타까워서 조금이라도 산업 경쟁력 확보에 기여하자는 마음으로 수사대를 운영하고 있어요. 다른 안보수사대는 북한 간첩 등 대공사범을 잡는데, 어쩌면 경제 간첩인 산업스파이 검거는 그 이상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6~2021년 8월까지 총 112건의 산업기술이 유출됐다. 36건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 국가핵심기술이다. 직·간접적 경제적 피해액은 26조원 이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산업기술·영업 비밀 침해 사범 수사 중요성은 점점 커진다.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세검정로 별관에서 만난 서울경찰청 안보수사6대 대장 박준범(47) 경정의 걱정은 해외 경쟁사가 우리의 유사·동일한 기술을 갖는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지난 2021년 수사권 조정 이후 만들어진 안보수사6대가 쉴 틈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
첨단산업보호 중점검찰청을 만든 검찰이나 특허청, 관세청 등보다 먼저 산업기술 침해 사범 수사 중요성을 파악한 경찰은 2010년부터 전문수사팀을 운영해왔다. 2021년 수사권 조정으로 외사국에서 안보수사국으로 업무가 이관됐고, 최근에는 1개팀이 증원돼 총 5개팀이 운영된다.
안보수사6대 창설 첫 책임자가 된 박 대장은 사실 기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경찰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경위로 입직한 그는 안보·외사·수사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다. 발령받은 뒤 매일 야근하며 서류와 씨름했지만,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직원들하고 배우는 자세로 울면서 서류를 봤어요. 근데 정말 이게 재밌는 거예요. 힘든데, 정말 힘든데 가슴이 뛰는 겁니다. 재미를 느끼고 1년이 안 됐을 때쯤에는 중앙대 산업보안대학원에 등록했어요. 무엇보다도 저 스스로가 배우고 알아볼 것이 참 많다고 절실히 느껴서 제 발로 찾아갔어요."
박준범 서울경찰청 안보수사6대장이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세검정로 별관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이동률 기자 |
피나는 노력은 일상에도 녹아들었다. 수사 특성상 산업계 동향이나 분야별 최신 이슈를 파악하는 것은 필수다. 직원들과 현장학습모임 활동(모임명 SSG)을 통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좋은 기사나 논문이 있으면 단체 대화방에 '쓱'하고 올려, 정보를 '쏙쏙' 얻고, 실력을 '쑥쑥' 키우자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최근 많은 개선도 있었다. 팀 증원을 비롯해 시스템을 대폭 개편해 지방청은 해외 유출 사건 위주로, 일선서는 안보수사팀이 신설돼 국내 사건 상당수를 담당한다. 지방청 수사관이 기업에 방문하고 관련 행사도 참가하는 등 예방·홍보 활동도 이어간다. 기업 현장에서 기술 유출 징후 파악, 피해 신고 접수 등의 첩보 수집 활동을 강화했다.
산업기술·영업 비밀 유출 침해 사범 수사 핵심은 신속성과 정확한 증거 확보다. 그만큼 압수수색 영장 집행은 수사의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영장 발부가 다른 범죄와 비교하면 쉽지 않다. 무형의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사안이라 난도가 높고, 피의자 측에서는 이미 공개된 정보라든지 본인 연구개발 성과라는 등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영업 비밀성이 있고, 어떤 기술이 어떤 중요성을 갖추고 있으며, A기업 기술을 B기업이 가진 것은 이러저러한 면에서 의심스럽다는 점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해요. 압수수색 방식도 달라요. 보통 파란 상자를 들고 가지만 저희는 소위 007가방 속 포렌식 장비와 저장장치만 들고 갑니다."
수사는 압수수색을 기준으로 전·후반전으로 나뉜다. 전반전 수사에서 영장 신청을 위한 조사를 진행한다면 후반전에는 압수물 분석과 포렌식, 관련자 조사를 벌인다. 다른 수사대가 서울청 디지털포렌식계에 의뢰하는 반면, 안보수사6대는 직접 포렌식을 진행한다. '신속성'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수사를 벌여도 송치·기소 이후 재판 단계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는 비율이 적은 점이다. 관련 법률이 아직 미비하고, 범죄 특성상 확정판결이 나오는 사이 침해된 기술은 '헌 기술'이 된다. 그만큼 철저한 첩보 입수와 신속한 수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는 서대문구에서 종로구로 수사대를 옮긴다. 좀 더 기업 접근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방위산업기술 수사는 국가정보원이나 서울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와 연결되지만, 안보수사6대 역할도 중요하다. 향후 더욱 집중할 분야다.
"어렵고 고될 수 있지만 최근에는 방위산업기술과 R&D 연구과제, 취약한 중소기업 보호 등을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입니다. 국가핵심기술 시작이 될 수 있는 R&D 연구과제부터 보호하며, 국가 경제·안보에 기여하고 싶어요."
bel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