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현장 뒷골목 새벽처럼 한산
주민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
상인 "매출 90% 감소하기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있다. /정채영 기자 |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5일이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이 된다. 이 시간 동안 이태원의 골목골목은 유령도시로 변했다.
3일 오전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골목 뒤에서 <더팩트> 취재진이 만난 상인들과 주민들은 아직 참사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한국에 온 모르간(27)은 참사 발생 전부터 이 골목에 살았다. 모르간은 "원래는 시끄러운 곳이었지만, 지금은 사람도 없고 밤에도 조용하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현장에 있었던 탓에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부터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때 슬프다"며 "아직도 기억이 남아 있어 힘들다"고 말했다.
바로 옆 골목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이수정(28) 씨는 업계 특성상 야근이 잦아 저녁을 먹으러 나오거나 새벽에 퇴근할 때면 늘 시끌시끌한 골목을 지나야 했다. 그러나 항상 손님이 꽉 찼던 회사 앞 식당은 저녁을 먹으러 가도 자리가 넉넉하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같은 날은 원래 같으면 새벽까지도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었어요. 지금은 몇몇 문이 열린 펍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전부죠."
참사 당일 현장과 가까이 있었던 그는 출근길을 걸어올 때면 그날 인파 속에 끼어있는 느낌이 든다.
그날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100일의 시간 동안 상인들은 하루하루 늙어갔다. 시계가 점심시간을 가리키는 무렵에도 이곳은 여전히 새벽같이 한산했다.
참사 현장 바로 뒤에서 10년 넘게 국밥집을 운영하는 A씨는 가게 문을 열면서부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태원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피해를 봐야 하는 것이냐"며 "월세가 몇천만 원씩 되는 가게도 있는데 하루에 꼴랑 10만 원 벌고 집에 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정부가 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면 보상해주든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보상해주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애초에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사고도 안 났을 것 아니냐"고 고함쳤다.
남편과 중식당을 운영하는 송모(34) 씨는 "우리는 점심 장사를 주로 해 저녁 장사를 하는 곳보다는 피해가 적겠지만 우리만 해도 저녁 손님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인들 입장에서는 유족들 마음도 헤아려서 어떻게든 해결이 되고 경기가 회복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참사 현장 맞은 편의 퀴논길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채영 기자 |
이날 취재진은 이태원의 식당, 담배 가게, 옷 가게 등 10여 곳의 상인들을 만났지만, 대부분 참사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를 꺼렸다.
맞은편 퀴논길에는 참사 현장 뒷골목보다는 드문드문 사람이 다녔지만, 참사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퀴논길에서 캐시미어 장사를 하는 김모(62) 씨는 "코로나19 때 클럽발 확진자로 한 차례 몸살을 겪고 괜찮아지나 했는데 참사가 일어났다"며 "오늘은 아침 11시에 문을 열었는데 단골손님 한 팀 왔다 간 게 전부"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때 50% 정도 줄어든 매출이 지금은 90%가 줄었다". 캐시미어는 겨울 한철 장사인데 공치고 들어가는 날도 있다. 김 씨는 "원래는 이렇게 페인트칠이 벗겨진 걸 내버려 두는 성격이 아닌데 이제는 굳이 해야 하나 의욕이 없다"며 얼룩진 지붕을 가리켰다.
퀴논길에서 15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B씨도 "매출이 반토막 났다. 저녁이 되면 확실히 알 수 있다"며 "이태원 자체에 사람들이 안 나온다.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캐시미어 가게 지붕 페인트 벗겨졌지만, 사장님은 페인트를 칠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정채영 기자 |
chaezero@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