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38억 빼돌린 일당…이름·신분 다 속였다[사건추적]
입력: 2023.02.02 05:00 / 수정: 2023.02.02 05:00

경찰, 전세사기 가담자 11명 송치
피해자 '최소' 47명…계속 추가 고소


임대차 권한이 없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47명의 임차인을 속여 약 38억 원을 빼돌린 11명을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이동률 기자
임대차 권한이 없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47명의 임차인을 속여 약 38억 원을 빼돌린 11명을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서울 관악경찰서는 임대차 권한이 없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고 임차인 47명을 속여 약 38억 원을 빼돌린 11명을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사건 피해자들이 계속 늘며 수사는 무기한 이어지고 있다. 더는 같은 수법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사건을 재구성해봤다.

◆"같이 일하는 사이라 괜찮다"…수상한 전세 계약

사건은 2018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해자 A씨는 새 전셋집을 구하고자 관악구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렀다. 2명의 중개소 직원은 "전세가 몇 개 없는데, 마침 좋은 집이 있다"며 문제의 집을 소개했다. 특히 "이만한 가격의 전세는 일대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집이 마음에 들었다. 중개소 직원이 "최대 모을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가"라며 웃돈을 보채자 1000만 원을 더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자 직원은 "이 집과 관련한 사람을 연결해 주겠다"며 남성 신모 씨를 소개했다.

신 씨는 A씨와 만나 '혹시 신탁을 아는지' 물었다. '모른다'고 답하자 신 씨는 자신은 명의상 임대인일 뿐, 실소유주는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없다"며 "실소유주가 믿을만한 사람이라 공정증서도 작성해줄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공정증서는 공증사무소 직원이 특정 사실에 관한 법률적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 만드는 문서다.

A씨는 계약을 체결했다. 꺼림칙한 부분은 있었다. 신 씨는 실소유주가 아닌 본인 이름으로 계약하자고 했다. 자신과 실소유주가 같이 일하는 관계라 괜찮다고 설득했다. 이에 A씨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찾아가 "명의상 집 주인인 신 씨 이름으로 계약해도 괜찮은지"를 확인했다.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기에 잔금을 포함한 전세보증금 전액을 신 씨 계좌에 입금했다.

입주 후 한동안은 문제가 없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신 씨가 하자 문제도 도맡아 처리해줬다. 그렇게 계약 기간 만료인 2년이 흘렀다. A씨는 신 씨에 계약서 작성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괜찮으니 그냥 계속 살아라"는 대답만 되돌아 왔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며 송모 씨의 명함을 건네받았다. 앞으로는 송 씨에 연락하란 의미였다.

알고 보니 신 씨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대표였다. 이름도 신 씨가 아닌 박모 씨였다. 명의상 임대인인 진짜 신 씨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실소유주를 본 입주민 역시 없었다. 단 관리사무소 직원이라던 송 씨가 실소유주의 자녀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알고 보니 신 씨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대표였다. 이름도 신 씨가 아닌 박모 씨였다. 명의상 임대인인 '진짜 신 씨'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실소유주를 본 입주민 역시 없었다. 단 관리사무소 직원이라던 송 씨가 실소유주의 자녀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돈 없어 폰도 개통 못해" 배짱…주민 집단 피해

첫 계약 3년 만에 결국 문제가 터졌다. 모 신탁회사의 채권팀이 집에 찾아왔다. 이들은 "이 집은 신탁인데 당신(A씨)이 불법으로 거주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왔다"고 설명했다. 당혹감을 느낀 A씨가 신 씨에 전화하자 "일단 빨리 이사를 가라"는 대답이 왔다.

A씨는 관리사무소 직원 송모 씨에도 연락했다. "빨리 이사를 가야 하니 전세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답변은 늘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집이 나가야 돈을 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집이 나가질 않아 불안한 상태로 지낸 게 6개월. 그 사이 같은 건물 여러 입주민이 똑같은 피해를 토로했다. 입주민끼리 모여 대책 회의를 하며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신 씨는 공인중개사 사무소의 대표였다. 이름도 신 씨가 아닌 박모 씨였다. 명의상 임대인인 '진짜 신 씨'의 정체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실소유주를 본 입주민 역시 없었다. 단 관리사무소 직원이라던 송 씨가 실소유주의 자녀였다.

입주민들은 자신을 신 씨로 속여온 박 씨에 찾아가 항의했다. 박 씨는 "진짜 신 씨는 바지사장이고, 전세보증금은 실소유주한테 들어갔다"면서도 "실소유주는 돈이 한 푼도 없어 휴대폰조차 개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배짱이었다.

관악경찰서는 지난해 5월 진짜 신 씨 등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실소유주의 존재를 파악한 뒤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증거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총 11명의 사건 관련자를 색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넘겼다. /박헌우 기자
관악경찰서는 지난해 5월 진짜 신 씨 등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실소유주의 존재를 파악한 뒤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증거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총 11명의 사건 관련자를 색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넘겼다. /박헌우 기자

신고를 접수한 관악경찰서는 지난해 5월 진짜 신 씨 등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실소유주의 존재를 파악한 뒤 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증거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총 11명의 사건 관련자를 색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지난달 검찰에 넘겼다.

2017년 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발생한 피해자만 총 47명, 피해액은 38억 원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추가 피해자들의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고소장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 수사가 진행 중"이라며 "엄정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집 계약 전 등기부등본을 통해 신탁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탁등기된 부동산은 웬만해선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것이다. 신탁회사의 사전 승낙을 받으면 괜찮을 수 있으나 현실에서 승낙되는 경우는 드물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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