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믿어줘서 고마워요"…성범죄 피해자의 '최후 보루'
입력: 2023.01.29 00:00 / 수정: 2023.01.29 00:00

경기북부청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장윤정 수사팀장
처벌 가능 여부 떠나 '듣는 사람' 역할로 피해자 경청


지난 20일 경기 의정부시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에서 만난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수사팀장 장윤정(51) 경감. /장윤정 팀장 제공
지난 20일 경기 의정부시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에서 만난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수사팀장 장윤정(51) 경감. /장윤정 팀장 제공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 20일 경기 의정부시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에서 만난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수사팀장 장윤정(51) 경감은 편한 길, 익숙한 길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삶을 살았다.

장 팀장이 경찰에 입직한 1990년 여경 채용 인원은 현재와 비교하면 소수였다. 한 은행과 동시에 합격한 장 팀장은 예견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봉사'하는 직업에 끌려 경찰을 선택했다. '트리플 A형'이라고 자칭할 만큼 소심한 성격이지만, 추진력은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주변에서 지인들이 '굳이 왜 경찰을 하냐', '큰 은행에 합격했는데 근무 여건도, 급여도 낮은 경찰을 왜 선택하냐'고 말리기도 했어요. 근데 은행 업무는 틀에 박힌 일상인 것 같아 경찰공무원을 선택했습니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순경으로 입직한 장 팀장은 운전면허시험장 시험관과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공항경찰대 외사과, 경찰청 과학수사과, 경기북부청 수사과, 의정부경찰서 수사과 등에서 근무한 뒤 현재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수사팀장으로 발령났다.

경찰청 과학수사과 근무 시절인 2005년에는 '과학수사 체험학교' 운영에 큰 역할을 했다. 과학수사 체험학교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범죄현장과 경찰실무에 간접 경험으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 미국 드라마 'CSI' 방영이 큰 역할을 했다.

개발도상국 젠더폭력 예방 분야에 경찰 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콩고민주공화국 젠더폭력 예방사업 현지기획조사단으로 2019년 참여했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우리나라가 젠더 분야에 도움을 주는 데 역할을 했다.

1990년 순경으로 입직한 장윤정 팀장은 운전면허시험장 시험관과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공항경찰대 외사과, 경찰청 과학수사과, 경기북부청 수사과, 의정부경찰서 수사과 등에서 근무한 뒤 현재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수사팀장으로 발령났다. /장윤정 팀장 제공
1990년 순경으로 입직한 장윤정 팀장은 운전면허시험장 시험관과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공항경찰대 외사과, 경찰청 과학수사과, 경기북부청 수사과, 의정부경찰서 수사과 등에서 근무한 뒤 현재 경기북동부해바라기센터 수사팀장으로 발령났다. /장윤정 팀장 제공

장 팀장 앞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해바라기센터'가 만들어지면서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해 경찰과 여성가족부, 의료기관이 협업하는 조직이다. 2004년 경찰이 상주하지 않은 형태로 연세의료원에 설치됐고 이듬해 상주 모델인 원스톱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경찰병원에 처음 설치됐다.

해바라기센터는 선뜻 112신고를 하거나 고소장을 제출하기 어려워하는 성폭력 피해자가 많이 찾는다. 진술을 받아 수사 증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장 팀장은 확보한 진술이 송치·기소 이후 법원 단계에서 유죄 입증에 중요한 증거로 작용할 때 큰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동·장애인 범죄피해자 조사는 쉽지 않다. 증거능력을 가진 오염되지 않은 진술을 확보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기 때문이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아동·장애인 면담조사 동료전문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 수사관을 점검하고 전문성을 기르려는 취지다.

제도가 처음 시작할 때 어김없이 손을 들어 참여한 장 팀장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경찰이 제 역할을 하도록 내부에서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교수 등 외부 평가보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동료의 조언이 '특효약'이 되기 때문이다.

"진술을 오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개방형 질문을 사용해 아동·장애인 진술을 이끌어내는 전문가로 모두 양성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또 아동·장애인 가해자도 있고요, 시·도청별 아동·장애인 전문조사팀을 설치하는 방안도 고민하면 좋겠어요."

장 팀장은 해바라기센터가 범죄피해자의 '최후의 보루'라고 말한다. 법의 한계 등으로 유죄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기 불가능할 때가 종종 있다. 가해자 형사처벌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에 적어도 '듣는 사람' 역할로서 피해자 편에 선다고 한다.

"유죄 입증이 쉽지 않았던 한 청소년 피해자가 있었는데 진술을 들은 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 있는지'를 물었더니, '믿어줘서 고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보통 수사환경과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보람을 느낍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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