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 씨 아버지 송후봉 씨
'잘해주지 못해, 지켜주지 못해' 찢어지는 아빠의 가슴
지난해 10월29일 참사가 발생한 뒤, 3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인터뷰한 지 81일 만인 지난 19일 고 송은지 씨 아버지 송후봉 씨를 서대문구 한 빵집에서 다시 만났다. /최의종 기자 |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고 송은지 씨의 아버지 송후봉(60) 씨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차 대접에 고맙다며 웃음을 짓다 금세 굳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10월29일 참사가 발생하고, 3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빈소에서 인터뷰한 지 81일 만인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한 빵집에서 다시 만났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다음 달 5일이 되면 이태원 참사 발생 100일째다. 송 씨는 100일이 다가오는 동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고 말끝을 흐렸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유가족들을 수소문했고 처음 15명이 모였다고 한다. 현재는 200여명의 유가족협의회가 꾸려졌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12월25일 크리스마스와 1월1일 신정이 있었다. 송 씨는 은지 씨가 살아있을 때 함께 보냈던 크리스마스와 신정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제 구정을 맞이하지만, 예전과 같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4남 2녀 중 다섯째입니다. 지방에 형님, 누나들도 계셔서 명절 연휴가 되면 아내와 아이들과 내려가고는 했습니다. 형제끼리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고 그랬는데, 올해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요."
참사 직후 첫 인터뷰 당시 송 씨는 딸을 생각하면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 바 있다. 평소 딸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는 송 씨는 장례 절차를 거치며 은지 씨가 누구보다 주변에 사랑받았고, 삶에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 여의도 소재 여행사에 취업한 송 씨가 상사·동료에 사랑받고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는 딸에게 아버지로서 조언과 격려를 해주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평소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적금을 들었더라고요. 제가 25살 때 모았던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모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가진 것은 없지만 자기가 스스로 하려고 하는 모습을 알게 되면서 살아있을 때 (제가) 진작 알아서 고민도 들어줬어야 했는데 미처 못했어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송은지 씨. /송후봉 씨 제공 |
송 씨가 참사 현장을 찾을 때는 49재였던 지난달 16일이다. 그전까지는 이태원을 방문하면 무너질까봐 찾지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난 뒤 현장을 찾아 좁디좁은 골목을 처음 봤을 때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것이 떠올라 마음이 찢어졌다고 한다.
참사 당일 은지 씨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와 물건을 사러 간다며 외출했다고 한다. 이후 친구와 함께 참사 피해를 입었고, 친구는 상해를 입었다. 송 씨는 은지 씨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친구가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81일 사이 특수본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불구속 송치하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혐의없음으로 결론지은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국회 국정조사는 여야의 정쟁으로 지각 출발한 뒤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송 씨는 특수본 수사를 놓고는 '셀프 수사' 였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으며, 국정조사는 정쟁의 장이 된 것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특수본 수사는 '봐주기'였으며, 국정조사도 본래 취지인 '진상규명'은 관심 없이 여야의 정쟁만 있었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유족 등도 참여하는 객관적인 조사 기구 등을 통해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져야 하고 그렇게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송 씨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 쉽지 않다고 한다.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유가족들을 배려하고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은지가 아직도 꿈에 나와요. 언제는 은지를 불렀는데 얼굴을 보여주지 않더라고요. 저는 제가 딸을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가슴이 찢어지고 있어요. 저희 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조치를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bel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