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교묘해지는 병역 면탈…"단속, 처벌 강화해야"
검찰과 병무청이 '가짜 뇌전증 병역 비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각종 병역 면탈 수법이 주목받고 있다./뉴시스 |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검찰과 병무청이 '가짜 뇌전증 병역 비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각종 병역 면탈 수법이 주목받고 있다. "귀신이 보인다"며 정신질환을 주장하는가 하면, 응원용 나팔을 귀에 대고 청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11일 <더팩트>가 군 판사·검사 등 출신 법조인의 설명을 종합한 결과, 병역 면탈 유형으로는 청각 마비, 손가락 절단, 심지어 고환을 제거해 병역판정 검사에서 4급 또는 면제를 받은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검사 등급에 따라 1~3급은 현역, 4급은 사회복무요원, 5~6급은 군 면제가 된다.
군 판사 출신 손광익 변호사는 "한 쪽 눈을 빛으로 과도하게 자극해 순간적으로 시력을 떨어뜨린 뒤 검사를 받으면 두 눈의 시력 차이가 커 면제된 경우가 있다"며 "항문에 갑자기 과한 힘을 주거나, 각성성분이 들어간 음료를 먹고 고의로 혈압을 높이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병무청 법무관을 지낸 윤병관 변호사는 "멀쩡한 어깨를 수술해서 습관성 탈구로 병역을 면탈하고, 소변에 혈액이나 약물을 섞고 검사를 받은 경우도 있다. '귀신이 보인다'며 정신질환자 행세를 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병무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10년간 고의 병역 면탈자는 578명이다. 병무청이 2012년 특별사법경찰을 도입한 이후 적발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해당 자료에서 병역 면탈 유형은 고의 체중조절이 165명으로 가장 많았다. 같은 소속팀 축구선수 간 아령을 들고 손목을 과도하게 꺾어 연골을 손상시킨 수법을 공유하기도 했고, 응원용 나팔을 장기간 귀에 노출해 청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6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신체적 손상보다 정신질환을 통한 꼼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자살 사고, 관계단절 등 허위증상을 주장해 정신과 진단서를 발급 받거나, 현역으로 입대해 고의적으로 우울감 등을 호소한 뒤 제대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 적발되는 식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가짜 뇌전증(간질) 진단' 역시 틈새를 노린 수법이다. 군 검사 출신 전웅제 변호사는 "간질은 증상이 언제 발생할지 모르고, 관련 제출 서류인 뇌파나 MRI 판독지 결과에서도 평소 이상없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걸 악용해 병역 기피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뇌전증 등 허위 증상을 꾸며내 의뢰인들을 도운 브로커 2명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사진은 서울남부지검./이덕인 기자 |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은 '가짜 뇌전증 병역 비리'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뇌전증 등 허위 증상을 꾸며내 의뢰인들을 도운 브로커 2명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이들은 병역 면탈의 대가로 돈을 수수하고, 협박성 제안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역 면탈 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6년 이상 실형을 받은 범죄자는 의무 복무 대상자가 아닌 점을 고려한 양형 기준이다. 최근에는 병역법이 개정돼 병역 면탈죄로 1년 6개월 이상 실형을 받더라도 재복무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손 변호사는 "현재까지 브로커는 공범으로 처벌 받았지만 단순 자문과 돈을 받은 경우에는 (처벌에)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뇌전증 사건의 경우 금전적 수익과 협박 등 정황으로 볼 때 병역법에 대한 법리적 판단 이전에 특별가중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병역 회피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 변호사는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회피 수법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수사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단속해야 근절될 듯하다"며 "예방 차원에서 병역 면탈 관련자들에 대한 인적사항을 공개하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 변호사는 "병역 컨설팅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병역 면탈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병무청이나 관련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며 "병역 면탈 행위자에 대한 실제 형량도 대부분 1년 미만이나 집행유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변호사는 "엄벌을 통해 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하고, 병무 비리 관련 특별사법경찰 조직 인력을 늘리는 게 단기 처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현역 비율을 최소한으로 하고 부사관, 군무원 등을 확대해 군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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