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발동…법적 다툼 예고
입력: 2022.11.30 00:00 / 수정: 2022.11.30 00:00

윤 대통령 직접 국무회의 주재 '강경'
헌법·국제노동기구 협약 위반 반박도


정부가 파업에 나선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노동계는 더욱 강력한 파업투쟁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남용희 기자
정부가 파업에 나선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노동계는 더욱 강력한 파업투쟁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남용희 기자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정부와 노동계의 강 대 강 대치가 격화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파업에 나선 화물운송 노동자들에게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노동계는 더욱 강력한 파업투쟁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29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엿새째 파업 중인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의결했다. 2004년 제도 도입 이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관련 규정을 근거로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첫 사례다.

윤 대통령은 "경제는 한 번 멈추면 돌이키기 어렵고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는 많은 희생과 비용이 따른다"며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우고,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파업 피해가 가장 큰 시멘트 업계에 우선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시멘트 공급이 멈추자 레미콘·건설업계까지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관련 운수종사자(이하 화물차주)는 2500~2800여명으로 파악된다.

명령을 송달받은 운송업체와 화물차주는 다음날 24시까지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복귀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 및 3년 이하 징역·300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이 이뤄진다.

당초 업무개시명령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이날 국무회의는 한덕수 총리의 순방 일정으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할 예정이었지만, 전날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한다고 긴급 공지했다.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재난안전기본법상 물류체계 마비는 사회재난에 해당된다"며 화물연대 파업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재난'으로 규정했다. 물류위기경보도 최고단계로 격상하는 등 강력대응 방침을 그대로 이행한 셈이다.

또 정부와 화물연대 간 2차 교섭이 오는 30일 열릴 예정인 가운데, 이날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하며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상민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은 "집단세력의 불법행위", "극소수 귀족노조" 등을 언급하며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추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동률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추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동률 기자

노동계도 총력 투쟁을 펼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파국으로 가는 결정"이라며 "대통령의 그릇된 노동관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삭발 투쟁에 나선 화물연대는 "정부의 반(反)헌법적 명령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명령 무효 가처분 신청과 취소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맞섰다.

이에 따라 법률적 쟁점을 놓고도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법적 자문을 거쳤다는 입장이지만, 업무개시명령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핵심협약에도 반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집단적으로 국민 경제에 위해될 우려가 있을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는 요건 자체가 명확성 원칙을 결여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요건이 추상적인데,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하게 만들었으니 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처분 신청 등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여지는 분명히 있을 듯하다"며 "법치주의라는 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인데, 그것을 국민의 경제 활동을 강제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건 법치주의를 오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 사건 경험이 많은 권영국 변호사는 "물류가 기업의 운송 과정에서 불편함을 발생시켜 기업 기능에 문제 되면, 곧바로 국가 경제의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전환되는지 의문"이라며 "과거 화물연대가 여러 차례 파업하면서 불편함을 야기했지만, 파업이 중단되고 난 뒤 즉각 회복됐다. 명령 요건부터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무리 운송을 해도 힘의 불균형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영업을 멈추는 건 노동자의 권리"라며 "개인으로 하면 문제가 안 되고, 집단으로 하면 문제가 되나. 안 되는 걸 강제하려고 보니 정부가 되레 불법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sp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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