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찰청 북도파출소 음영배 경위 인터뷰
치안 물론 주민들의 변호사·설비공·소방관
커피 한 잔도 공짜 없는 "청렴한 경찰관"
인천경찰청 중부경찰서 북도파출소 음영배 경위(사진)는 서울경찰청 기동대와 인천경찰청 외사과 등 굵직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근무해 왔으나, 올해 2월부터 도서지역인 북도면 시도리에 자리를 잡았다./주현웅 기자 |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어이, 어디가?"
섬 지역인 인천 옹진군 북도면 시도리. 마을 노인회장의 물음은 낯설었다. 분명 경찰 제복을 입고 순찰차에 올라탔는데 굳이 차를 멈춰 세운 다음 '어디 가냐'는 질문이라니. 도시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하지만 북도파출소 음영배 경위는 익숙한 듯 미소로 답했다.
"어르신, 태워다 드려요? 저야 순찰돌죠, 어딜 가겠어요."
노인회장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잘가. 난 노인회관 갈 건데 걸어가려고."
인천경찰청 중부경찰서 북도파출소 경찰관들에겐 일상이다. 음 경위는 서울경찰청 기동대와 인천경찰청 외사과 등 굵직한 분야에서 20년 넘게 근무해 왔으나, 올해 2월부터 도서지역인 북도면 시도리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 잡았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다. 인천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출퇴근해야 하는데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결항이 일쑤다. 이런 탓에 '주간-야간-비번-휴무' 등 일반적인 파출소의 근무 패턴은 불가능하다.
그는 한 번 출근하면 5일 연속으로 일해야 한다. 근무에 투입되는 동시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관사에서 지내야 하는 외로운 경찰관이다.
그러나 음 경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이야 당연하지만 표현은 겸손했다.
"사실 여기서 제가 할 일이 많지는 않아요. 신고 자체가 적거든요. 어쩌다 이웃 다툼이 있긴 한데 결국 알아서들 풀죠.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요 뭐. 대신 노인분들이 많으셔서 굴 따다 사고를 당하는 때가 있고,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가끔 음주폭행 사건이 발생해요."
<더팩트>가 함께 한 날 북도파출소에 접수된 신고는 1건도 없었다. 그렇지만 음 경위는 순찰차에 올라 구석구석을 쉼 없이 돌았다. 사진은 수기해수욕장에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인 다리 구조물을 점검하는 음영배 경위의 모습./주현웅 기자 |
그가 치안을 책임지는 시도리 일대는 불과 1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김기덕 감독 영화 '타임'의 배경이 된 '배미꾸미해변'과 KBS 드라마 '풀하우스' 촬영지인 '수기해수욕장' 등이 있어 매우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이 특히 아름다운 이유는 주민들의 온정 때문이다. <더팩트>가 함께 한 날 북도파출소에 접수된 신고는 1건도 없었다. 그렇지만 음 경위는 순찰차에 올라 구석구석을 쉼 없이 돌았다. 운전 중에 마주한 우체부, 어민, 면사무소 직원 등과 서로 미소와 목례를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바빴다.
너나 할 것 없는 공동체에서 음 경위는 수시로 변신을 한다. 가끔 변호사가 되고, 설비공이 되고, 소방관이 될 때도 있다.
"배관 등 고치는 것도 도와드려야죠. 또 외지에서 부품을 샀는데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다며 법적 문제를 묻곤 해 상담도 해드리고요. 불이 나면 경찰이며 소방이며 누구 임무라고 할 게 없어요. 여기는 모두 다 같이 하는 거예요."
신고가 없어도 주민들을 먼저 찾아가 민원을 듣는 일도 중요한 임무다. 이날은 배미꾸미해변 조각공원의 한 커피숍 사장님을 만나러 갔다. 이곳 사장님은 공원 인근의 고양이 수십 마리를 정성을 다해 돌보는 분인데, 간혹 고양이들이 홍역 등으로 아파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이날은 고양이들도 편안해 보였다. 커피숍 사장님은 경찰관이 함께 신경을 써준다는 것만으로 감사해했다. 그는 "음 경위한테 항상 고마워서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절대 그냥 받는 법이 없다"며 "억지로 돌려보내도 꼬박꼬박 입금을 하고 아주 청렴한 경찰관"이라고 자랑했다.
음영배 경위가 시도리 119센터로 향하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마을 특성상 경찰과 소방의 구분이 모호한 만큼 119센터에서도 음 경위가 도와야 할 일이 있을 수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최정호 소방관, 음 경위, 고걸섭 팀장./주현웅 기자 |
음 경위는 이어 시도리119센터로 향했다. 마을 특성상 경찰과 소방의 구분이 모호한 만큼 119센터에서도 도와야 할 일이 있을 수 있어서다.
적막해 보였던 119센터는 음 경위가 반갑게 손 흔들며 들어간 순간부터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고걸섭 시도리119센터 2팀장은 "타이어 펑크가 났다는 신고가 접수돼서 도와주느라 혼났다"며 "변기 뚫어주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음 경위도 함께 경험해본 까닭에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아름답지만 어쩐지 낯선 경찰과 소방의 대화가 이어졌다. 음 경위와 고 팀장은 학교 방학과 마을 대소사 등까지 두루 논의했다. 혹시 모를 사고가 나진 않을까 미리 의논해야 한다. 시도리에는 약 30명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있으나 중학교가 없다. 3명의 중학생들은 배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음 경위 일상이 편해 보인다면 오해다. 주민이나 관광객의 익사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고, 드론을 띄우다 가까운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와 충돌 위험이 빚어진 적도 있었다. 전부 발생하면 초대형 사고다.
인천경찰청 중부경찰서 북도파출소 전경./주현웅 기자 |
무엇보다 작은 섬마을이라도 경찰관이 존재하기에 치안과 질서가 유지된다. 안전뿐 아니라 각종 민원이나 불편사항 등도 척척 해결해줘 든든하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음 경위가 속한 북도파출소 직원은 7명이다. 1명이 쉬는 동안 2인 1조로 마을을 지킨다. 2명은 옆 섬인 장봉도 치안센터에 파견 나가 교대로 일한다. 정작 이들의 불편사항은 없을까. 음 경위는 망설임 없이 한 가지를 꼽았다.
"장봉도 치안센터에 순찰차가 없어요. 자율방범대 승합차를 빌려 타고 있긴 한데 순찰차 1대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도리보다 거주자는 적지만 면적은 더 넓은 곳이거든요. 관광객도 많고요. 꼭 개선돼서 장봉도도 더욱 안전하게 지키고 싶습니다."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