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범죄 최소 도시의 꿈…경찰 할 일 줄이는 경찰 'CPO'
입력: 2022.11.20 00:00 / 수정: 2022.11.20 14:06

이근호 성남 분당경찰서 경위 인터뷰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 전문가
1인 여성가구 범죄 예방에도 몰입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의 이근호 경위도 범죄예방진단경찰관(CPO)이다. 그는 동료 경찰관들의 할 일을 줄여주기 위해 남들보다 2배는 발로 뛴다./남윤호 기자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의 이근호 경위도 범죄예방진단경찰관(CPO)이다. 그는 동료 경찰관들의 할 일을 줄여주기 위해 남들보다 2배는 발로 뛴다./남윤호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흔히 뛰어난 경찰관이라면 범죄를 밝히고 가해자를 응징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런 경찰관이 많아야 사회도 안전해지겠지만,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경찰관이 별로 할 일 없는 사회 아닐까.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의 이근호 경위도 범죄예방진단경찰관(CPO)으로서 그런 사회를 꿈꾼다. 그는 동료 경찰관들의 할 일을 줄여주기 위해 남들보다 2배는 발로 뛴다.

CPO는 범죄 취약지를 미리 파악해 개선하는 게 주요 임무다. 이른바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셉테드) 기법을 통해 범죄를 최소화하는 도시 구조를 구상하고 적용한다.

이 경위는 경찰청이 CPO를 출범한 2016년부터 한 자리를 뚝심 있게 지키고 있다. 당시 함께 CPO 점퍼를 입은 동료들은 전부 부서를 옮겼다.

"근무 강도도 센 편이고 방식도 일반 경찰관들하고는 많이 달라요. 셉테드 사업에 필요한 예산 확보부터 실제 적용 과정에도 지자체 등 유관기관들을 설득하고 협업해야 하죠."

여러 기관과 함께 하는 일이라 오히려 CPO의 할 일이 더 많다. 사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추진까지 이뤄지게 하려면 그만큼 지역 곳곳 사정에 밝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경위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찰서에는 CPO가 1명뿐이다. 일당백이 필수다.

이근호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 범죄예방경찰관 이근호 경위가 분당경찰서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윤호 기자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 범죄예방경찰관 CPO 이근호 경위 인터뷰.
이근호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 범죄예방경찰관 이근호 경위가 분당경찰서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남윤호 기자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 범죄예방경찰관 CPO 이근호 경위 인터뷰.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CPO가 갖춰야 할 역량 중 하나다. 분당구에는 어두운 밤에도 골목을 비치는 램프등이 '수고했어 오늘도', '좋은 날이 올 거야', '당신은 소중한 선물' 등의 메시지를 밝힌다.

대부분 지자체가 설치한 것으로 알지만 실은 이 경위의 아이디어다. 범죄 욕구를 차단하는 LED경관조명기구로서 경찰청 셉테드 우수 사례 전국 3등을 차지했다. 이제는 다른 지역까지 확대 설치되고 있다.

"현재 분당동 주택가에만 60~70개가 설치됐어요. 생계형 범죄자들도 실은 많거든요.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려다가도 이 글귀로나마 교화되진 않을까 싶어 떠올렸어요. 주변 경관하고도 조화가 잘 이뤄져서 주민분들 반응도 좋죠. 가장 보람을 느낀 성과 중 하나예요."

지역 사회에 대한 섬세한 관찰 역시 필수다.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정자의 경우 과거에는 음주 등을 즐기는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사용돼왔다. 그러나 이를 중심이 낮은 벤치형으로만 바꿔도 문제는 개선된다.

이 경위는 일탈 행위나 범죄가 뛸 때는 날아야 한다. 범죄가 날면 떠있어야 한다.

"예컨대 침입 범죄의 경우 소위 베테랑 범죄자들은 CCTV 동선을 다 파악하고 있어요. 또 각 주택의 가스 배관과 덮개 구조, 심지어 문틈과 난간까지 전부 파악한 이들이 있죠. 여기에 접근 자체를 못 하도록 해야 하는데 도시 미관을 헤쳐서도 안 되고 고려할 게 많아요. 사각지대도 당연히 용서할 수 없죠."

현재 분당구는 3년 전보다 주택 침입 범죄율이 35% 감소했다고 한다. 이 경위는 "지역의 한국남동발전과 한국난방공사, 성남시 여성가족과, 사회복지협회가 똘똘 뭉친 결과"라며 "훗날엔 100% 감소를 꿈꾼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근호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 범죄예방경찰관 이근호 경위가 분당경찰서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남윤호 기자
이근호 분당경찰서 생활안전계 범죄예방경찰관 이근호 경위가 분당경찰서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남윤호 기자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경위는 거의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고 빨라야 밤 9시 넘어 퇴근한다. CPO 인력 부족도 원인이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만큼 범죄 유형도 다양해져 문제다.

그는 현재는 1인 여성 가구 범죄 예방에 몰입해 있다. 여성가족부와 함께 '여성 1인 안심 홈세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카메라가 달린 인터폰, 창문 경보기, 침입 스토퍼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는데 나중에는 노인을 비롯한 모든 취약 계층을 돕는 데에 힘쓰고 싶다.

"주민 통반장 회의에도 자주 참석하거든요. 민원을 모으고 사업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에요. 따뜻하게 말씀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고강도 노동이지만 결국 보람 때문에 이 일에 계속 욕심을 내는 것 같아요."

고민은 없을까. 이 경위는 사회 구조상 주정차 문제가 최대 걸림돌이라고 꼽았다. 도심 지역은 주차장이 협소하다 보니 집 앞에 주정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차량들이 간혹 CCTV를 가리고, 주차하는 순간에는 조도를 깨트리기도 한다.

이 경위는 "경찰과 지자체가 당장 해결하긴 힘든 문제"라며 "사회 전반의 치안 강화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함께 논의해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전국에 있는 CPO분들한테도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메시지를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내부적으로나 대외적으로도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일이거든요. 비록 모두가 박수를 주는 일은 아니지만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꼭 얘기하고 싶습니다."

chesco12@tf.co.kr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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