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마저 점령한 키오스크…어르신들 "자식 없으면 못가"
입력: 2022.11.19 00:00 / 수정: 2022.11.19 08:21

전국 대형병원서 키오스크 줄줄이 도입
표준화 및 노인 사용성 고려한 제작 필요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다리에 타박상을 당한 70대 이정진 씨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청하느라 바빴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시킨 대로 키오스크 앞까지 왔지만 사용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조소현 인턴기자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다리에 타박상을 당한 70대 이정진 씨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청하느라 바빴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시킨 대로 키오스크 앞까지 왔지만 사용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조소현 인턴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좀 도와주세요."

수도권의 한 종합병원. 다리에 타박상을 당한 70대 이정진 씨는 키오스크 앞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도움을 청하느라 바빴다. 안내데스크 직원이 시킨 대로 키오스크 앞까지 왔지만 사용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는 1년에 두세 번은 병원을 찾는데 올 때마다 키오스크의 사용법은 물론 존재마저 잊어버린다고 한다. 이 씨는 "늘 같이 오던 딸이 이젠 일을 시작했다"며 "이렇게 큰 병원에서 어디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영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변 도움으로 간신히 번호표를 뽑고 10여 분을 기다렸다. 그쯤 한 직원이 다가오더니 "이미 예약돼 있으니, 2층 정형외과로 가라"고 했다. 이 씨는 다리를 절며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이 씨는 2층에서도 난관에 부딪혔다. 안내 직원은 익숙한 듯 멀찍이 있는 키오스크를 가리키며 "채혈실 옆 수납 키오스크로 가셔서 수납부터 해달라"고 했다. 이 씨가 "다리가 불편하다"고 말했지만 "저희가 다 해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이 씨는 몇 분을 더 돌다 뒤늦게 안내받은 수납 창구에서 결제를 마쳤다.

업계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도입한 병원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삼성서울병원, 분당 차병원, 고대안산병원, 일산백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의 대형병원에서는 키오스크 도입이 대세다./조소현 인턴기자
업계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도입한 병원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삼성서울병원, 분당 차병원, 고대안산병원, 일산백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의 대형병원에서는 키오스크 도입이 대세다./조소현 인턴기자

노인들의 디지털 소외 현상이 대형병원까지 번졌다. <더팩트>가 수도권 일대 병원에서 만난 노인들은 "친구들이 대형병원을 어떻게 혼자 가냐고 한다"며 "다들 자식이 함께 가주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특히 병원의 키오스크는 관공서나 식당, 영화관 등보다 훨씬 어렵다고 호소한다. 공간도 넓은 데다 종류가 훨씬 다양하기 때문이다. ‘대기번호표 키오스크’, ‘도착 키오스크’(외래 접수용 키오스크), ‘CD업로드 키오스크’, ‘수납 키오스크’ 등이 제각각이다.

물론 도우미가 있는 병원도 있다. 하지만 직원들이 되레 불편을 토로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종합병원은 직원창구 앞에 도착 키오스크를 뒀다. 그러나 노인들은 키오스크를 사용 않고 곧장 직원에게 향한다. 직원 김모 씨는 "심장내혈관 병원이라 어르신들이 많은데 대부분 창구로 오신다"며 "접수는 접수대로 받고 꾸준히 키오스크 문의까지 받아야 해 일이 더 늘었다"고 불평했다.

업계에 따르면 키오스크 도입 병원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삼성서울병원, 분당차병원, 고대안산병원, 일산백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의 대형병원에서는 키오스크 도입이 대세다.

전문가들은 병원은 특히 고령층 수요가 많은 만큼 ‘키오스크 표준화’ 등 노인을 배려한 대책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병원마다 사용하는 키오스크가 다르고 업체별로 사용 방법이 달라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더 어렵다"며 "키오스크 사용법을 표준화하고 어르신들에 대한 정보화 교육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키오스크 제작 단계 때부터 노인들의 사용 역량을 측정하고 맞춰 생산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최종훈 이화여대 디자인학과 교수 "제작 과정에서 병원을 찾는 고객의 유형별로 사용자를 섭외해 사용성 테스트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버튼의 종류와 구성 등이 어떤 조건일 때 노인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개선이 시급한 문제"라며 "노인 입장에서 한 번은 괜찮지만 계속해서 도움만 받게 되면, 자신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에 우울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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