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만든 공간, 지자체 개입 난색
전문가들 “국가가 나서서 기록 보존해야”
이번 이태원 참사는 유족을 특정해서 쪽지 등을 전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조소현 인턴기자 |
[더팩트ㅣ주현웅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가시는 길 평안하시길 바랍니다.’‘그곳에서는 차마 못다 이룬 좋은 꿈 꼭 이루시길...’ ‘어른으로서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추모 공간은 시민 발길이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애도 메시지가 적힌 쪽지들은 출입구 벽면부터 역 표지와 기둥까지 점점 더 빼곡해진다. 바닥에는 국화꽃이 즐비하고 갖은 음식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이 쪽지와 물품들은 시간이 지나 어디로 가게 될까. 또 언제까지 추모 공간을 운영할 수 있을까. 이곳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시민들이 만든 공간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보존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만큼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더팩트>와 만난 추모 공간 자원봉사자 60대 강모 씨는 "이 공간도 주최측이 없다"며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정해진 게 없다"고 걱정했다. 특히 용산구와의 구체적인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이대로 떠난다면 추모 메시지는 바람에 날아가고 음식은 비둘기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강씨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해 오롯이 책임감으로 봉사에 나섰다"며 "나중에는 유족 분들께 보여드리고 사이버 추모 공간에 올리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도 난처한 분위기다. 구청 관계자는 "1번 출구 추모 공간은 시민들이 만든 공간이라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우선 빗방울에 닿지 않도록 비닐 등을 전달하고 음식물 쓰레기통과 장갑 등을 건넨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향후 계획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추모 공간을 조성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 ‘구의역 참사’, ‘신당역 살인사건’ 때도 시민들은 잊지 않겠다며 추모 자리를 만들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보통 추모 기간이 끝나면 유족분들께 의견을 여쭙고 원하시면 추모 물품을 모아 전달해 드린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애도 행위에 대한 기록은 국가적으로도 시민적 활동의 고귀함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조언했다./조소현 인턴기자 |
그러나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전례가 많지않아 서울시도 고심이 깊다.
세월호 참사 때는 시내 곳곳에 묶어놓은 노란 리본 및 추모글들을 수집해 기록화 사업을 추진했다. 구의역 참사 김군 추모 당시에는 스크린도어에 붙은 애도 쪽지들을 유족 뜻에 따라 전하거나 정리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는 유족을 특정해서 쪽지 등을 전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우선은 정부나 지자체가 기록물들을 수거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또 기록물 관리에 대한 매뉴얼도 고민할 때라고 강조한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행정기관도 참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현재로선 국가가 나서 기록을 수집하는 게 나아 보인다"면서도 "사회적 애도 행위에 대한 기록은 국가적으로도 시민적 활동의 고귀함을 표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해외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생성한 기록뿐 아니라 민간 기록도 적극적으로 수집을 하고 기록을 잘 보존하는데 한국은 아직 잘 잡혀 있지 않다"며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