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는 그나마 나은 편?…식품노동자들 "터질 게 터졌다"
입력: 2022.10.25 00:00 / 수정: 2022.10.25 00:00

노동부, 13만여곳 사업장 안전조치 이행 여부 단속
생산량 충당 때문에 과로 만연…기업은 투자 소홀


정부가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데 이어 손가락 절단 사고가 일어난 SPC그룹을 상대로 산업안전보건 기획 감독을 실시한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SPC 계열사 SPL 평택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민이 SPC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뉴시스
정부가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한 데 이어 손가락 절단 사고가 일어난 SPC그룹을 상대로 산업안전보건 기획 감독을 실시한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SPC 계열사 SPL 평택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 참여한 시민이 SPC를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뉴시스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그나마 SPC는 큰 회사라 나은 편이에요."

SPC 계열사 직원이 기계 사고로 숨지고 크게 다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자 식품업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50인 미만 소기업의 경우 생산량을 우선하다 안전규정을 소홀히 하는 곳이 많아 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안전장치를 갖췄는지 등을 점검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25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전날부터 6주 동안 식품 혼합기 등의 기계·장비를 보유한 전국 13만5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단속한다.

이번 단속은 지난 15일 평택 SPL 제빵공장 노동자가 배합기에 끼여 숨진 사건과 23일 성남의 샤니 제빵공장 직원이 기계 사고로 손가락을 절단하는 등의 일이 잇따르자 나온 조치다. SPL과 샤니는 SPC의 계열사다.

업계 관계자들은 50인 미만 기업 점검에 특히 주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론화하지 않았을 뿐 작은 기업일수록 노동자 사상사고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노동부가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식품 혼합기 등을 사용하는 곳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결과 사상자는 305명에 달했다. 이중 6명은 사망, 190명은 후유증으로 90일 이상 일을 쉬어야 했다. 휴업한 이들 중 183명(96.3%)이 50인 미만 기업 종사자다.

식품업계 노동자들은 이번 단속도 겉핥기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올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대부분 회사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춰 놓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이면에는 생산 차질 등을 이유로 안전규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작업 문화가 있다고 꼬집는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SPC계열사 평택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노웅래 의원이 준비한 SPC 자료가 보이고 있다./이새롬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복지공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SPC계열사 평택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노웅래 의원이 준비한 SPC 자료가 보이고 있다./이새롬 기자

충남 모 식품공장의 한 직원은 "손가락 끼임과 절단 등은 대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비교적 자주 발생하는 사고"라며 "대부분 작업자 부주의 탓으로 결론 나지만 업계의 풍토나 구조적 문제가 야기하는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무리하게 생산량을 맞추려다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배합기 등 각 기계에는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설치돼 있으나 이를 가동할 안전센서를 끄고 작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센서 작동으로 기계를 멈추면 생산량을 맞추기 힘들어서다.

과로가 만연한 업계 분위기도 개선사항으로 꼽힌다. 예컨대 케이크나 샌드위치 등 빵 종류는 유통기한이 짧아 생산을 미리 해놓거나 미룰 수가 없어 단기간에 대량 생산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이유로 주52시간 넘게 일하는 일이 잦고, 피로에 따른 사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채용이나 설비 투자 확대 등 기업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다. 수도권 모 식품기업의 한 관리자급 직원은 "나중에 생산량이 줄게 되면 해고 등으로 인력을 감소해야 하는데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직원 역시 주 64시간씩 일하는 '특별연장근로' 지시를 받아왔다고 알려졌다. 사건 발생 후 배합기 작업이 중단되자 회사는 대구의 SPC 계열사 제빵공장으로 파견해 생산량을 충당하기도 했다.

노동부 단속을 바라보는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밀도 있는 조사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한 직원은 "안전 설비와 규정을 갖췄는지 정도만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필요하다면 익명 설문 등을 통해 직원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슨 지시를 받고 일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식품은 마진율이 낮은 편이라 무리하게 생산을 늘리는 분위기가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며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된 50인 미만 기업은 더욱 열악하다"고 덧붙였다.

노동부 관계자는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여도 발생하지 않을 사고가 지속되고 있다"며 "기업 스스로 사고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 예방할 수 있도록 강력한 감독과 현장 지원을 병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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