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상>] 세상이 버거운 엄마의 마지막 선택 '베이비박스'
입력: 2022.10.24 00:00 / 수정: 2022.10.24 17:10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 총 2023명
엄마가 찾아가는 아이 10명 중 1명
"베이비박스는 최후의 선택...국가 역할 해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에 설치돼 있는 베이비박스./김이현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에 설치돼 있는 베이비박스./김이현 기자

태어나자 마자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아기들이 있다. 그 생명의 첫 공간은 베이비박스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과 함께 더 큰 불행을 막기위한 차선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논쟁은 불가피하게 부모가 키울 수 없는 아기를 국가가 어떻게 책임지느냐로 향한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엄마와 아이들을 지키는 일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더팩트>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엄마들과 아기의 안타까운 현실을 상.하편으로 나눠 싣는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이현·조소현 인턴 기자] 끝없는 고난에 부닥쳐 양육을 포기한 부모들은 서울 신림동 한 가파른 언덕을 찾는다. 담벼락 한쪽엔 아기를 누일 만한 '베이비박스'가 있다. 박스를 열면 온기와 함께 노랫소리(엘리제를 위하여)가 나온다. 10초가 채 지나지 않아 위기영아 긴급보호센터 상담사도 후다닥 뛰어나온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아기를 두고가는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아기는커녕 본인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 아프거나, 가난에 시달리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시선마저 싸늘하다. 결국 생명을 죽이지 않으려는 엄마들의 마지막 선택지인 셈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가 13년째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만 2023명이다. 매년 150~180명의 신생아가 유기되고 동시에 구조된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유기를 하기 위해 임신하는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양 국장은 "성폭행,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도 있고 화장실, 모텔 등에서 몰래 출산한 뒤 아기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가 맡기고 가는 사례도 많다"며 "미혼모들이 출산 우울증에 빠진 상황에서 여기로 오는데 아기도 살리고 산모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가 열리면 상담사가 달려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육사가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 상담사는 돌아서는 부모를 붙잡아 설득을 거듭한다. 보호센터 내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상담이 가능한 '베이비룸'이 설치돼 있다.

보호센터 내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상담이 가능한 베이비룸이 설치돼 있다./김이현 기자
보호센터 내에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상담이 가능한 '베이비룸'이 설치돼 있다./김이현 기자

양 국장은 "저희가 '10개월 동안 아기를 안전하게 품어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첫 마디를 전하면, 엄마들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다"며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던 엄마들은 아기를 1년만 맡아주시면 어려운 환경을 좀 가다듬고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들 한다"고 설명했다.

2023명 중 원가정으로 돌아간 아기는 256명이다. 17%(148명)는 다른 가정에 입양됐다. 올해엔 81명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졌고, 20명의 아기가 다시 친부모 곁에 안겼다. 양 국장은 "부모가 아기를 잠시 위탁했다가 다시 데려간다고 찾아오는 게 가장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나머지 아기들은 보육원 등 시설로 보낸다. 베이비박스는 법적으로 공인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입양전문기관에 아기들을 보낼 순 없다. 더구나 아기들은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미등록 아기'들이다. 교회가 미아 신고를 하면 경찰이 유전자 검사를 하고, 구청에서 아기를 데려간 후 시설에 보낸다.

법을 떠나 우선 생명은 살려놓고 보자는 게 베이비박스의 취지지만, 영아유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출생신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미혼모들의 마지막 선택지면서도 결국 맡겨진 아기들 역시 법적·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입양마저 힘들다는 비판도 있다.

양 국장은 사실 베이비박스가 없어지는 게 궁극적 목표다. 독일 같은 경우 100개 정도의 베이비박스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베이비박스 내부./김이현 기자
양 국장은 "사실 베이비박스가 없어지는 게 궁극적 목표다. 독일 같은 경우 100개 정도의 베이비박스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베이비박스 내부./김이현 기자

양 국장은 "사실 베이비박스를 없애는 게 궁극적 목표다. 독일 같은 경우 100개 정도의 베이비박스가 있다. 미국에선 베이비박스를 계속 만들지만 소방, 경찰, 병원이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는 그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왜 여성들에게, 엄마들에게 더 큰 2차적 가해를 하고 그 짐을 자꾸 더 무겁게 하는지 묻고 싶다"며 "아기 낳으면 도망가는 아빠 등 남성들에 대한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유의미한 판단을 언급했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창모 부장판사는 자신의 아이를 편지와 함께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엄마의 행동을 영아유기로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도 해당 판결에 항소를 포기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양 국장은 "박스 안이 따뜻하고, 보호하는 사람도 매시간 상주하니 유기죄가 성립이 안 된다고 본 거다. 이제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이라며 "베이비박스는 최후의 수단이지 절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최선이라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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