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경찰에도 '응급실' 있다…범죄피해자 '마음의 벗' 10년
입력: 2022.10.23 00:00 / 수정: 2022.10.23 00:00

최진이 서울경찰청 피해자보호계 강서케어센터 케어요원 인터뷰

서울 강서구 강서케어센터에서 만난 최진이 케어요원(사진·경위)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경찰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딱딱한 제복 대신 편안하되 단정한 사복 차림을 하고, 굳은 표정 없이 환한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했다. 범죄 피해자들에 관해 얘기할 땐 간혹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남윤호 기자
서울 강서구 강서케어센터에서 만난 최진이 케어요원(사진·경위)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경찰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딱딱한 제복 대신 편안하되 단정한 사복 차림을 하고, 굳은 표정 없이 환한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했다. 범죄 피해자들에 관해 얘기할 땐 간혹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남윤호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저는 경찰 내 응급실에 소속됐다고 생각해요. 범죄 피해를 입은 분들의 마음속 상처까지 빨리 나아질 수 있도록 신속히 대응하고 치료하는 일을 하니까요."

서울 강서구 강서케어센터에서 만난 최진이 케어요원(경위)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경찰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딱딱한 제복 대신 편안하되 단정한 사복 차림을 하고, 굳은 표정 없이 환한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했다. 범죄 피해자들에 관해 얘기할 땐 간혹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서울경찰청 피해자보호계 소속인 최 요원은 올해로 10년째 범죄 피해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있다. 한해 범죄 피해자들과 상담한 횟수가 약 200회. 주말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폭행과 성폭력 및 살인미수 사건 등의 피해자들을 만난다.

최 요원은 상담한 이들 대부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아픔이 되살아날까 인터뷰에서 구체적 사례들을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범죄 사건을 일상적으로 마주한다는 이유로 관성적으로 일하거나 무뎌지는 태도를 가장 경계한다.

"사실 10년 전과 지금의 저를 비교해보면 달라진 점들은 있어요. 살인 사건을 접하면 과거엔 충격 자체였지만 지금은 내성이 생겼죠. 그렇지만 내성이 타성이 돼선 안 된다고 늘 다짐해요. 타성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 일상에선 다채로운 놀거리를 찾죠.(웃음)"

2012년 3기로 선발된 최 요원은 가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과거에는 대부분이 2차 피해의 개념을 생소하게 느껴 막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경찰 내부에서도 피해자 보호에 각별히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서다./남윤호 기자
2012년 3기로 선발된 최 요원은 가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과거에는 대부분이 2차 피해의 개념을 생소하게 느껴 막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경찰 내부에서도 피해자 보호에 각별히 노력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서다./남윤호 기자

경찰 케어요원은 심리학 석사를 대상으로 한 경찰청 공개채용을 거쳐 선발된다. 2년 이상의 상담 실무 경력도 갖춰야 한다. 순경보다 한 계급 위인 경장으로 입직하지만, 일정 기간은 지구대·파출소 등에서 발로 뛰며 현장에 대한 이해도 익혀야 한다.

2012년 3기 공채로 선발된 최 요원은 가끔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과거에는 대부분이 2차 피해의 개념을 생소하게 느껴 막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경찰 내부에서도 피해자 보호에 각별히 노력하는 분위기가 대세다.

"10년 전에는 경찰 안에서도 케어요원을 낯설어 했어요. 그래서 형사들과 소통 문제를 빚기도 했죠. 피해자는 아직 진술할 상태가 못 되는데, 형사들은 조사를 진행하려다 보니까요. 지금은 달라요. 오히려 수사 일선에서 피해자 상태를 먼저 파악하고 저희에 상담을 요구하기도 해요."

최 요원은 형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경찰관을 바라보면서 걱정이 크다. 상당수가 겪고 있는 '대리외상' 때문이다. 잔혹한 범죄에 따른 상처를 경찰관들도 함께 겪고 있다는 의미다. 최 요원이 경찰관에도 꾸준한 상담을 권하는 이유다. 대리외상은 간호사와 소방관 등에게도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10년차 배테랑인 최 요원마저 경찰 내부의 '마음동행' 프로그램을 통해 상담을 받는다. 불현듯 떠올라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건들이 여럿이다. 잔혹하게 살해된 어머니 시신 DNA검사에서 막 걷기 시작한 자녀들의 손길 흔적이 발견되거나, 가스라이팅과 같은 데이트폭력을 당하고도 가해자 심경에 동조하는 피해자 등을 볼 때면 심경이 복잡하다.

"대리외상은 연차가 오래돼도 어쩔 수 없어요. 경찰에 있으면 언론 보도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잖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취미를 갖고 자신의 마음 상태도 돌봐야 한다고 당부해요. 자기보호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거든요. 꼭 범죄 피해자가 아니더라도요."

고단한 업무지만 피해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케어요원을 찾아와주기를 바란다. 특히 가족이나 인척 등 친밀한 관계가 부족한 외로운 피해자들에게는 케어요원이 마음의 벗이 되어줄 수 있다. 자신의 피해를 마음 놓고 토로하기 힘든 세상이지만 경찰 케어센터의 문은 늘 열려 있다.

케어요원들이 심리상담만 해주진 않는다. 법률적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절차도 직접 안내하고 도와준다. 현실적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돼야 상담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한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올해 이 기금은 총 826억 원 편성됐다. 법무부·검찰청이 433억 원(52.4%), 여성가족부가 361억 원(43.8%)인데 경찰청은 32억 원(3.8%)에 불과하다./남윤호 기자
부족한 범죄피해자보호기금. 올해 이 기금은 총 826억 원 편성됐다. 법무부·검찰청이 433억 원(52.4%), 여성가족부가 361억 원(43.8%)인데 경찰청은 32억 원(3.8%)에 불과하다./남윤호 기자

케어요원들의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일까. 최 요원은 이 질문에도 오로지 피해자 걱정뿐이었다. 부족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을 콕 집었다. 올해 이 기금은 총 826억 원 편성됐다. 법무부·검찰청이 433억 원(52.4%), 여성가족부가 361억 원(43.8%)인데 경찰청은 32억 원(3.8%)에 불과하다.

피해자 보호는 신속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범죄 사건이 접수되면 가장 먼저 나서는 경찰이지만 관련 예산은 턱없이 적다. 퇴원비가 지원 안 돼 병원에 꼼짝없이 머물러야 하는 피해자는 아직도 많다. 이들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경찰 임시숙소 등도 태부족이다.

최 요원은 경찰 단계의 피해자 보호지원 확대는 위급한 생명을 구하는 응급실을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피해자 보호에도 골든타임이란 게 있어요. 신속히 안전을 확보하고 치유를 도우며 적정 기관에 연계하는 과정 전부가 중요하거든요. 저희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범죄 피해를 입었더라도, 누구 한명 빠짐없이 충분히 지원받고 회복할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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