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에 호스피스 확대 정책제안, 조력존엄사 법안 발의도
존엄사(웰다잉·Well Dying)를 둘러싼 논의에 다시 불씨가 지펴졌다. 다만 자기 판단에 의한 삶의 종결이 자칫 사회적 타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더팩트DB |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웰다잉'(Well Dying)으로도 불리는 '존엄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곧 '연명의료결정법'(연명의료법)이 위헌인지 검토에 돌입한다.
국회에서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자는 법안이 처음으로 발의됐다.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평온한 상태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다만 자기 판단에 의한 삶의 종결이 자칫 사회적 타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 "호스피스 대상 질환 확대" 인권위에 정책제안
최근 인권위에는 '존엄한 죽음에 역행하는 위헌적 법률 개정 정책제언서'가 접수됐다. 연명치료를 멈추고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을 5개로 제한한 연명의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5개 질환은 말기 암,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호흡부전 등이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 최창석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김효붕 중부로 대표변호사가 제안했다. 이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고 사회적 돌봄 부재로 고독사와 간병 살인 및 동반 자살 등이 증가하는 현실"이라며 "질병 종류에 따른 호스피스 선택권을 침해하는 연명의료법을 개정해 행복추구권을 실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 발표한 '제1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에 따르면 국내 말기암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은 2008년 7.3%에서 2017년 22%까지 늘어 증가 추세다. 단 미국 43%, 영국 95%에 비해서는 아직 낮은 수치다.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곳은 대만으로 56% 수준이다.
윤 교수 등은 비참한 죽음이 이어지는 한국에서 사회적 공론화와 정책 논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연명의료의 중단 등 결정 이행 통계자료를 들며 가족 의사에 따른 연명치료 비율이 60%라고 부각했다. 절반 이상의 연명치료 환자가 본인이 아닌 가족의 뜻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들은 인권위가 헌재에 위헌 의견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질병에 따른 호스피스 선택권 제한은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박탈하는 인권 침해라는 이유다. 윤 교수는 "국가와 사회가 넓은 의미의 웰다잉 정책을 병행해 말기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선택의 길을 열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일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콜롬비아 등에서는 ‘조력존엄사 금지법’에 위헌판결이 잇따랐다. 죽음에 대한 결정도 자유라는 요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AP.뉴시스 |
◆ 조력존엄사 인정 국가 "죽음 결정도 자유"
웰다잉 논의는 국회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안규백 더북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조력존엄사' 도입을 뼈대로 한 연명의료법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사 표시가 가능한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역시 웰다잉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행복추구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리서치가 올해 7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는 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하는 여론이 82%로 집계됐다. 반대는 18%로 나타났다.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안 의원실은 "조력존엄사 법제화는 세계적 추세"라며 "국민 다수가 찬성하는 만큼 존엄사법 입법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2020년 독일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콜롬비아 등에서는 ‘조력존엄사 금지법’에 위헌판결이 잇따랐다. 죽음에 대한 결정도 자유라는 요지다. 이에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6월 현지 사상 처음으로 조력존엄사가 실행되기도 했다. 12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된 44세 남성이 대상이다. 천주교 본산인 이탈리아에서 교황의 만류에도 이행돼 파장이 컸다.
경제적 부담 등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조력자살이 강요될 수도 있는 등 남용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채 발견된 '수원 세 모녀'의 발인식이 경기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는 모습./박헌우 인턴기자 |
◆ 외부 요인으로 죽음 선택 논란…세계서도 아직 소수
하지만 한국에서 웰다잉 법제화의 현실화는 녹록지 않다. 조력존엄사를 허용하자는 법안 발의는 안 의원이 처음이다. 사회적 논의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도 지난 7월 해당 법안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하며 "존엄사는 권리와 윤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지속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안 통과를 추진하더라도 선행 과제들이 많다.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과 연령의 기준, 기대여명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삶의 종결에 관한 요청이 진정성을 갖췄는지도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형법도 손을 봐야 한다. 형법은 '존중할 만한 동기'에 따른 자살 도움도 차단하고 있다.
무엇보다 조력존엄사 허용은 자칫 사회적 타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크다. 지난 7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낸 '조력존엄사 논의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는 "중증질환에 걸렸을 때 가족 지원 없이 본인 부담으로 의료비를 충당할 능력이 있는 환자는 많지 않다"며 "조력존엄사가 합법화되면 간병비 부담 등 환경적 요인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를 쓴 이만우 입법조사관은 "의사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아직 소수"라며 "경제적 부담 등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조력자살이 강요될 수도 있는 등 남용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조력존엄사를 제도화하려면 엄격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그 전에 환자 돌봄 서비스 등의 체계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