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완전범죄는 없다…핏자국 쫓아 '범죄의 재구성'
입력: 2022.10.09 00:00 / 수정: 2022.10.09 12:07

김천회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혈흔형태 전문수사관 인터뷰

김천회 서울경찰청 혈흔형태분석전문수사관(경위)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자하문로별관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김천회 서울경찰청 혈흔형태분석전문수사관(경위)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자하문로별관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2021년 7월, 서울 중랑구 한 주택에서 택시기사 김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악취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시신은 완전히 부패한 상태였다. 시신 옆에 놓여있는 흉기는 피로 덮여 지문마저 남아있지 않았다.

망자는 말이 없었지만, 혈흔은 마지막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벽면과 창틀에는 '정지이탈혈흔'이 선명했다. 가해자가 김 씨를 찌른 뒤, 다시 한번 가격할 때 김 씨가 흉기를 팔로 막으면서 피가 튄 것이다. 외력에 의한 혈흔은 방향이 높은 곳에 2개소, 창틀 아래에서 3개소 목격됐다.

김천회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혈흔형태 전문수사관은 "김 씨가 서 있는 상태에서 최소 2번, 높이가 낮아진 상태에서 최소 3번 가격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사관의 혈흔분석은 '스모킹건'이 됐다. 경찰은 CCTV를 분석해 동료 택시기사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뒤 검거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에 만취해 당시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기억을 전혀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럽고 답답하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징역 15년을 선고했고, 2심 재판부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가해자들은 살인사건에서 이른바 '블랙아웃'을 내세우지만, 객관적 증거인 혈흔형태 분석을 넘어서진 못한다. 동료 택시기사 살해사건 역시 김 수사관의 혈흔형태 분석 결과서가 재판부의 판단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김 수사관이 범죄 현장에서 혈흔을 어떻게 추적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김 수사관이 범죄 현장에서 혈흔을 어떻게 추적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김 수사관은 "과거 살인사건은 지문만 나와도 사건 해결이 됐지만, 최근엔 같이 거주하는 사람이나 면식범 범행이 늘어나기 때문에 유전자가 의미가 없다"며 "현장에 분포된 혈흔의 높이와 위치, 방향 등을 분석하면 행위의 순서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수사관은 주로 강력사건에 투입돼 '피'를 본다. 특히 CCTV가 있어도 범행이 잘 안 보이는 사각지대, 블랙아웃 상태의 피의자가 기억이 없다거나 부인하는 경우 김 수사관이 나선다. 판단하기 애매한 사건에서 혈흔의 모양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셈이다.

사건 현장에서 길게는 꼬박 하루를 보낸다. 김 수사관은 "현장은 누가 들어가면 훼손이 되기에 최대한 빨리 간다. 단순한 사건은 보통 4시간이고,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분석 결과는 현장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15~20일간 결과서를 작성한다"고 했다.

결과서 작성은 3D 실험을 동반한다. 사무실에서 사건 현장을 그대로 재구성한 후 여러번 실험해 혈흔의 형태를 파악한다. 혈액 방울 하나가 비산돼 분포된 방향을 보고 며칠을 고민하고 다시 실험한다. 혈흔을 분류하는 체계만 해도 50여 가지에 이른다.

혈흔분석은 망자의 한뿐 아니라 억울한 피의자를 구제해주기도 한다. 김 수사관은 "문지방에 스스로 부딪쳐 극단선택을 한 남성이 있었는데, 유가족은 함께 있던 여성분을 용의자로 특정했다"며 "여러 실험을 통해 여성이 직접 타격한 사실이 없다는 걸 밝혀냈다"고 말했다.

김 수사관은 제 분석이 100% 정확하다고 할 순 없지만, 대략적인 행위라도 재판 기록에 남으면 망자의 억울함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이선화 기자
김 수사관은 "제 분석이 100% 정확하다고 할 순 없지만, 대략적인 행위라도 재판 기록에 남으면 망자의 억울함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이선화 기자

그만큼 심리적 압박이 뒤따른다. 그는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은 다 어렵지만, 형태분석은 무엇보다 주관성이 들어가면 안 된다"며 "분석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만큼 법정에 서서 증언하는 데 심리적 압박이 있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혈흔분석에 집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김 수사관은 "제 분석이 100% 정확하다고 할 순 없지만, 대략적인 행위라도 재판 기록에 남으면 망자의 억울함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망자를 보고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와닿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직 체계적인 환경은 갖춰지진 않았다. 혈흔형태분석수사팀은 지난 2월 신설돼 현재 3명뿐이다. 혈흔형태분석 전문수사관이 되려면 3주간 연수를 받은 뒤, 현장에서 20건의 결과서를 작성해야 한다. 평소 업무와 별개로 쉬는 날 현장에 나가 사건을 맡아야 하는 것이다.

김 수사관은 "5년 내 결과서 20건을 작성해 증명해야 하고, 5년이 지나면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수도권이 아닌 곳은 유혈사건이 많이 없다. 망자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비번 날 현장에 가는 직원들도 결국 열정이 식는다. 발을 더 쉽게 들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spe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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