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잘못 없다…'신당동 스토킹'에 숨겨진 가해자 논리
입력: 2022.09.23 00:00 / 수정: 2022.09.23 00:35

"원망은 가해자 논리, 범행 동기는 '앙심'"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이동률 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이 2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전주환은 피해자에게 고소당해 중형이 구형되자 '원망'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경찰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가해자 중심적인 스토킹 범죄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김병찬 스토킹 살인' 사건도 비슷했다. 김병찬은 연인이 이별을 통보하자 스토킹을 시작해 법원의 접근금지 잠정처분을 받은 뒤 살해했다. 자신은 당시 범행 현장에서 피해자의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가 울리자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를 자극한 스마트워치 소리가 범행동기였다면 피해자나 경찰도 책임이 있는 셈이 된다. 하지만 접근금지 처분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계획했다는 게 수사기관과 전문가의 시각이다.

전주환 사건도 '원망'보다 '앙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원망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은 결국 범행 원인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 돌리게 된다. '원망'이라는 전 씨의 진술을 그대로 인용해 발표한 경찰도 문제라는 지적을 받는다.

또한 스토킹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만나주지 않아 앙심을 품고 위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킹 순간부터 범행을 저지르려는 욕구를 품는다는 분석이 있다. 만나주지 않자 '원망'이 생겨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가해자' 논리라는 의견이다.

경찰 수사 결과 전주환은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또한 '앙심'에 따른 범죄라는 정황이다.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의 주소와 근무지, 근무시간을 알아냈고 샤워캡과 장갑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에 GPS 교란 앱도 설치했다. 원망에 따른 우발적 분노보다는 앙심을 품고 이성적으로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스토킹 범죄를 막으려면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스토킹처벌법은 지난해 3월 독소조항 논란이 있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포함된 채 국회를 통과해 10월21일 시행됐다. 사회적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처벌 불원 의사를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이 역시 피해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제도로 볼 수 있다.

단순 쌍방 폭행사건은 고소를 취하하면 종결된다. 스토킹 범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의견이다. 일방적으로 협박 등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쌍방 폭행 사건처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고소를 놓고 수사기관은 시스템적으로 고소인이 취하하면 없어지는 사건이라고 보는데, 그동안 스토킹 범죄도 똑같이 봤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는 범행을 저지르려고 마음을 먹고 시행하는 것이기에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스토킹처벌법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를 추진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하는 방안과 잠정조치 시행 기간 단축을 위해 '긴급잠정조치'를 신설하는 방안 등의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고인을 기리고 있다. /이동률 기자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은 한 시민이 고인을 기리고 있다. /이동률 기자

서울 중부경찰서는 지난 21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살인) 혐의로 전주환을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김수민 형사3부 부장검사를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보강수사에 나섰다.

전 씨는 지난 14일 오후 9시쯤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에서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20대 역무원 A씨를 사전에 준비한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2018년 입사한 전 씨는 이듬해부터 동기였던 A씨를 스토킹했다. 지난해 10월까지 350여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그해 10월7일 A씨는 전 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특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기각했다.

지난 1월에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다시 고소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 2·7월 전 씨를 각각 재판에 넘겼다. 두 사건은 병합됐고 지난달 18일 검찰은 징역 9년을 구형했다.

bel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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